채권자가 바뀌자, 채무자의 삶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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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자가 바뀌자, 채무자의 삶 무너졌다

이종태 기자

입력2026.07.02. 오전 6:40 수정2026.07.02. 오전 6:42

은행이 추심업체에 팔아넘긴 부실채권이 채무자의 숨통을 조인다. 가혹한 빚의 굴레에 저항해온 시민단체 롤링주빌리의 김미선 본부장으로부터 약탈적 금융시장에 맞서는 법을 들었다.


롤링주빌리 김미선 본부장. 롤링주빌리는 출범 이후 8000억원가량 부실채권을 소각했다. ©시사IN 박미소

채무자란 ‘누군가’에게 빚을 갚아야 하는 법적 의무를 지닌다. 그 ‘누군가’는 채무자로부터 ‘원리금을 받을 법적 권리(대출채권)’를 갖는다(채권자). 여기서 ‘누군가’는, 정체성이 특정되지 않는 부정대명사(不定代名詞)다. 채무자가 빚을 상환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 심지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누군가’의 정체성은 당초의 점잖은 은행원으로부터 사람깨나 제대로 괴롭힐 줄 아는 거친 추심업자들로 바뀌어버린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은행이 대출채권을 놀랄 만큼 싼 가격(심지어 원리금의 2~3%)으로 이른바 ‘매입채권 추심업체’에 팔아버렸기 때문이다. 사실상의 폐기 처분이다. 이로써 추심업자는 원리금 회수 권리를 가진 새로운 채권자로 등장한다. 채무자는 제도권 금융 시스템으로부터 그 대출채권과 함께 폐기 처분되었다.

은행이 그 대출채권을 버린 이유는 분명하다. 채무자의 현금흐름이 이자 지급도 어려울 정도로 바닥을 드러내서다. 반면 새로운 채권자인 추심업체는 마른 수건에서 물을 짜내는 데 특화된 능력자들이다. 원리금을 고의로 떼먹으려는 악덕 채무자는 드물다. 대다수의 선량한 한계 채무자들은 불안에 떨며 마지막 남은 생계비마저 쥐어짜이게 된다.

이 정도의 상황이라면, 다른 ‘누군가’가 혜성처럼 등장해 채권자들(은행과 추심업체)의 횡포를 저지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은행이 대출채권(부실채권)을 추심업자에게 넘기기 전에 미리 매입하거나 기부받아 소각해버렸다. 이로써 추심업자를 한계 채무자의 모이라이(운명을 주재하는 여신)로 만들었던 채권·채무 관계는 하데스(저승)로 영원히 꺼져버리게 된다. 2015년 출범한 시민단체 롤링주빌리는 그동안 모두 8000억원 상당의 부실채권을 소각했다. 끝없는 빚의 굴레에서 채무자들을 구해 내온 롤링주빌리 김미선 본부장을 만났다. 롤링주빌리는 일정 기간마다 죄나 부채를 탕감해주는 기독교 전통을 뜻하는 말이다.

롤링주빌리는 어떻게 출범하게 되었나.

관계자들은 오랫동안 취약계층의 재무 상담을 해온 사람들이다. 오래된 빚 문제로 고통받는 분들을 꽤 많이 만났다. 1997년 환란 이전에 섰던 보증으로 30년 이상을 고생한 분도 있다. 그동안 부실채권은 지나치게 무분별할 정도로 사고팔려 왔다. 심지어 채무자가 빚을 상환하려 해도 채권자가 누군지 알 수 없어서 곤란한 경우도 있다. 이런 채무자들을 도우려 했다. 또한 부실채권이 단지 한계 채무자 개인이 아니라 사회와 정부, 공동체 전반에 절실한 문제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은행들은 부실채권을 사실상 폐기 처분함으로써 자신의 고객들이 지옥 같은 상황에 빠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터이다. 괘씸하지 않았나.

국내 4대 은행의 간판. Ⓒ연합뉴스

이해할 만한 측면도 있다. 은행 장부상 부실이 계속 쌓이면 영업에 불이익을 받으니까. 1997년 환란 당시 상당수 은행들이 부도로 퇴출된 바 있는데 이로 인한 나름의 방어기제를 쌓은 것 같다. 굳이 채권자를 악마화하거나 채무자를 미화할 필요는 없다.

그런데 은행 역시 부실채권의 대규모 양산에서 자유롭지 않다. 대출 심사를 엉망으로 했기 때문에 빌려준 돈의 상당 부분을 상환받지 못한 것 아닌가. 그들은 차입자의 신용점수, 담보,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등 ‘규격화된 데이터’를 대량으로 컴퓨터에 입력한 뒤 그 출력 결과로 대출 여부를 기계적으로 결정한다.

천편일률적인 정량적 평가와 규격화된 데이터들만으로 차입자의 상환 능력을 평가하는 것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제도가 굳어지면서 발생된 부실채권인 만큼, 문제 발생 시엔 채무자와 성의 있는 상담을 통해 상환 조건을 조정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지금은 부실채권을 손쉽게 외부 추심업체로 던져버리는 것이 관행화된 듯하다.

그런 은행의 행태에도 채무자들은 순응한다.

한국 특유의 채무에 대한 도덕감이 있다. ‘못 갚으면 인간으로서 끝장’이라고 생각한다. 상당수 한계 채무자들은 채권자를 ‘나에게 빌려준 고마운 사람’으로 생각하며 죄책감을 품는다. 이런 심리로 인해 채무자들은 채무조정 대신 ‘돌려막기’를 하며 점점 더 ‘나쁜 빚’을 지게 된다. ‘불리한 조건’이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조건’으로 이행한다. 채무자들은 갑자기 몰락하지 않는다. 돌려막으면서 서서히 무너진다. 그조차 한계에 달하면 선택지는 두 개밖에 없다. 가출이나 극단적인 선택.

롤링주빌리가 그동안 해온 사업을 총괄한다면.

2015년부터 2021년까지는 부실채권(NPL)을 매입·소각했다. 재원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금. 다른 하나는 증권사나 대부업체들로부터 그들이 보유한 부실채권을 기부받았다. 그렇게 소각한 부실채권 규모가 8000억원쯤 된다. 2022년부터는 단체의 무게 중심이 자연스럽게 옮겨졌다. 상환능력을 상실한 채무자와 채권자 사이를 중재하며 원리금을 조정한다. 합의가 이뤄지면 그 빚을 대신 갚아(대위변제) 채권·채무 관계를 종결시킨다. 다만 조건이 있다. 해당 채무자가 그 빚만 청산하면 더 이상의 빚이 없어서 재기할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

대위변제에도 적잖은 돈이 들 텐데.

시민들의 후원금이 가장 든든한 자금원이다. 신용카드사회공헌재단(카드 사용자의 ‘미사용 포인트’와 기부금을 재원으로 사회적 약자 지원 사업을 하는 법인)이나 지자체의 공익사업을 위탁 수행하고 받는 사업비도 한몫을 한다. 빚 때문에 월세나 난방비가 연체되어 퇴거 위기에 처한 분들도 지원하고 있다.

롤링주빌리는 제도권 금융에서 비롯한 사회적 폐해를 줄이기 위해 싸워왔다. 최근 특히 주목하는 문제가 있다면.

신용카드로 인한 부채다. 특이한 시장 구조다. 특히 카드론의 경우 소비자가 처음엔 5% 정도로 빌리는데 원리금을 꼬박꼬박 상환하고 나면 금리가 10% 수준으로 폭등해버린다. 금리 단차가 엄청나게 크다. 신용평가사들이 카드론 이용 자체를 채무자의 재무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간주하고 신용점수를 깎아버리기 때문이다. 금융 지식이 얕은 학생, 전업주부, 노년층 등이 이런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다.

또한 인터넷 은행들은 출범 당시 빅데이터와 핀테크 기법으로 정교한 신용평가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했는데,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제대로 된 신용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걸까. 무서울 정도로 쉽게 빌려준다. 최근에는 시중은행 대출의 이자를 상환하기 위해 인터넷 은행으로부터 쉽게 빌리고, 다시 그 이자를 막기 위해 고리 대부업으로 갈아타는 ‘오버래핑(중첩) 다중채무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2015년 주빌리은행 출범식에 참석한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왼쪽). ©성남시

이재명 정부의 포용금융 TF는 최근 중금리 대출 확대를 계획하고 있다.

중금리 대출이 고리 대부나 불법 사채로 가는 길을 막을 수 있다면, 좋은 방안이다. 중금리를 사용할 수 있는 계층과 하위 20% 취약계층이 완전히 분리된 집단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미 언급했지만, 채무자는 갑자기 추락하기보다는 서서히 떨어지면서 가정 해체까지 이르게 된다. 우리가 상담할 때 보인다. ‘이분을 그대로 두면 5년 후엔 어떤 삶을 살고 있겠구나.’ 중금리가 ‘서서히 진행되는 몰락’을 예방할 수 있는 수단이기 바란다.

추심업 개혁 방안들도 거론된다.

추심업 시장을 정화하려는 시도로 본다. 다만 금융위 TF가 ‘신용정보업’이란 업태에도 주목해주면 좋겠다. 신용정보업체들은 추심업체와 달리 부실채권을 매입·보유하지 않는다. 이들은 은행이나 대부업체, 심지어 캠코 같은 금융 공공기관으로부터 추심을 위탁·대행하고 회수한 만큼 수수료를 받는다. 신용정보업체 직원들은 수수료가 거의 모든 수입이기 때문에 한계 채무자들로부터 필사적으로 돈을 짜내야 한다. 그들 역시 대단히 불합리하고 기형적인 노동 형태에 짓눌리고 있다. ‘을’과 ‘을’이 서로 충돌하고 갈취하는 비극적 상황이다.

탈·불법적 추심은 어떻게 이루어지나.

롤링주빌리가 소각하거나 최근에도 상담 중에 확인한 부실채권 가운데는 소멸시효(금융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가 이미 완료된 것도 많았다. 이 사실을 채무자는 물론 추심자들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학적 불법행위(밤낮을 가리지 않는 전화 독촉, 채무자의 직장에 찾아가 망신 주기, 가족들 협박 등)가 자행되었다. 채권사가 시효를 무한정 연장하기도 했는데, 현장 상담사들은 이를 보면서 자조적으로 ‘불사(不死) 채권’이라고 불렀다. 소멸시효가 완료된 채무자에게 추심자가 전화해서 ‘오늘 2만 원만 입금하면 연체 이자를 탕감해 주겠다’라고 말한다. 소멸시효를 모르는 채무자가 2만 원을 입금하면 그 채권이 부활하고 다시 가혹한 추심이 가능해졌다. 현재는 이런 행위들이 모두 불법 추심에 해당하며 처벌받을 수 있다.

아까 캠코가 신용정보사에 추심을 위탁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공공 배드뱅크’가 그런 짓을 하고 있다니.

캠코가 문재인 정부 당시 시민들의 장기 연체 소액 채무를 모두 정리(상환능력 있는 채무자에겐 일정 부분이라도 받고, 없는 채무자의 빚은 탕감)한다고 나섰을 때 ‘신용정보사에 추심을 위탁하지 말라’고 주장했다. 캠코가 직접 채무조정을 한다면 공공성을 고려할 것이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공공기관 선진화법’으로 인력 구조조정이 단행되면서 캠코 직원들도 크게 줄어든 상태였다. 결국 ‘채무 상담 인력도 없다’라며 신용정보사들에게 추심을 위탁하고 관리도 소홀했다. 언론을 통해 공론화하니 캠코 측은 ‘직접 관리하겠다’라고 답변했는데 상황이 개선되지는 않고 있다. 예컨대 채무자가 근로 능력을 상실하여 기초수급자가 되면 법률상 추심이 중단된다. 수급비 등 최저생계비는 법률상 압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 5년(금융채권 소멸시효)이 지나면 빚은 법적으로 완전히 사라진다. 이를 막기 위해 캠코는 ‘소멸시효 시계’를 멈춘다. 채무자에게 걸린 부실 채권을 ‘언젠가 회수 가능한 자산’으로 살려두기 위한 꼼수다. 그러다 젊은 수급자가 간신히 몸을 추슬러 자활근로라도 시작하는 순간, 캠코는 멈춰둔 시계를 다시 돌려서 청년의 위태로운 수입마저 가차 없이 회수하거나 압류한다.

캠코로서는 굉장히 쉬운 자산(부실채권) 관리 방식이겠지만 채무자에겐 자활을 막는 거대한 벽이다. 왜 금융 공공기관까지 나서서 한계 채무자들의 재기를 돕기는커녕 ‘추노’ 하듯 쫓아다니며 괴롭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이른바 ‘도덕적 해이’가 확산될까 봐 그러는 것일까.

채무를 갚을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도 극소수 있다. 이들을 빌미로 채무자 전반을 도덕적 해이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일하는 분들(취업자) 가운데 40% 정도가 자영업자나 특수고용,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이다. 소득 발생이 불규칙적이라서 신용이 막히면 일상생활이 끝장나는 사람들이다. 각자 알아서 신중하게 신용을 관리한다.

2016년 말, 롤링주빌리의 전신인 주빌리은행이 3174억원 규모의 부실채권 소각 행사를 열었다. Ⓒ연합뉴스

롤링주빌리와 금융복지상담센터의 존재감은 인내하는 충실한 상담으로 채무자들의 세세한 정보를 파악하는 능력에 있는 것 같다. 이와 반대로 시중은행들은 고객의 구체적 상황은 도외시한 채 손쉽게 알아낼 수 있는 신용점수 등 ‘규격화된 데이터’만 알고리즘에 태워 대출 여부를 결정하고, 그 대출이 부실화되면 외부에 팔아버린다.

전국의 거의 모든 주민센터에 금융복지상담사가 한 명씩은 앉아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이뤄지지는 않았다. 수도권과 주요 광역 단체들 대부분에는 금융복지상담센터가 있지만, 대구광역시 포함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그리고 강원도 영동지방에는 그마저도 없다. 대구는 사채업자에게 돈을 대주는 전주들이 제일 많은 지역이고, 부산은 그 피해자가 수없이 양산되는 곳이다. 정부의 포용금융 정책이 이 부문에서도 일정한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 그래야 시민들이 불법 사금융에 속거나 수상한 투자상품(후순위 채권) 매입으로 재산을 탕진하는 불행을 차단할 수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이 필요하지도 않은 민간 보험에 가입하는 경우도 막아야 한다. 선의의 채권자들을 보호하는 한편 채무자 인권에 대한 인식도 개선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출처 :
채권자가 바뀌자, 채무자의 삶 무너졌다

2026-08-05T16:01:30+09:00 2026.08.05 1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