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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권을 소각하다가 – 김씨의 사연

 

주빌리은행의 채권소각에 대해

일반 대부업체는 금융회사로부터 채권을 사온 뒤 채무자에게 원리금을 갚으라고 독촉합니다. 그러면 채무자는 새로운 채권자에게 돈을 갚을 의무가 생깁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채권자가 계속 바뀌면 채무자는 이제 어디에 돈을 갚아야 하는지, 길을 잃게 됩니다. 결국에는 처음 대출을 해준 채권자의 책임은 사라지고 채무자의 책임만 남습니다.

주빌리은행 부설기관 주빌리대부도 오래 연체된 부실채권을 금융회사로부터 싼 값에 삽니다. 여기까지는 일반 대부업체와 똑같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다릅니다. 채무자를 독촉하여 돈을 받아내는 것이 아니라 전액 소각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예전에 채권을 매입하여 받았던 서류를 하나 소개해드리고자 합니다. 채권 매입 계약을 하면 업체로부터 채권의 원인이 되는 서류(원장)를 받습니다. 보통 수십개의 박스 분량인데, 개인별 대출 계약서부터 돈을 갚은 기록, 각종 독촉 서류 등 채권 존재의 근거가 되는 서류가 있습니다. 주빌리은행은 이 서류를 전부 파쇄하여 없애버리는데, 정신없이 종이를 파쇄기에 넣던 중, 김ㅇㅇ님의 사연이 활동가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낡디 낡은 서류를 발견하다

노랗게 빛이 바랜 서류에 타자기로 친 듯한 글씨입니다. 수백장의 서류를 소각하다가 이 서류를 보고 이렇게 오래된 서류를 그냥 없애는 것은 마치 오래된 화석을 보고도 다시 땅에 묻어버리는 것과 비슷한 행위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서류를 따로 빼놓고 살펴봤습니다.

‘대부금 원장’이라는 종이입니다.

 

가장자리가 너덜너덜해진 것이, 보기만 해도 적잖이 오래되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모든 내용이 수기로 작성되었습니다. 대부분 검은 펜으로 씌였는데 중요한 내용은 빨간 펜이나 색연필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상호’란에 ㅇㅇ소리사라고 씌여있습니다. 소리사가 뭔지 몰랐는데 검색해보니 악기나 음악 가전을 판매하는 상점인 것 같습니다.

 

▲ 구글에 ‘소리사’를 검색하여 나온 이미지

 

오른쪽 상단에는 채무자 이름과 주민번호가 쓰여있습니다. 채무자는 소리사를 운영하던 김ㅇㅇ님입니다.

1983년 4월, 100만원을 대출하고 매월 10만원씩 갚기로 되어 있습니다.

상환 기록을 보니 당해 6월부터 7월까지 10만원씩 두 번을 갚으셨고, 그 다음부터는 8만원, 3만원, 1만원씩 변제금이 작아지는 걸 보니 가게 재정이 계속해서 안 좋아진 듯 합니다. 1985년 7월 13만원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변제 기록은 없는 걸 보아 이후부터 김씨는 돈을 갚지 못한 걸로 보입니다.

표 오른쪽에는 이자를 계산한 내역이 있습니다. 기간별 이자가 얼마이며 언제 이자를 냈는지 깨알 같은 글자로 적혀있습니다. 당시 이율은 13%에서 22%로 높아졌습니다.

그 오른쪽에는 이씨와 최씨가 보증인으로 적혀있고, ‘부동산 구입’이라는 글씨가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빨간 글씨로 ‘보증인 독촉장 발급’이 적힌 걸 보니 보증인 중 누군가 부동산을 구입하여 빚 독촉을 한 것 같습니다. 그 아래 연필로 ‘86.2.11 서울 이씨로부터 전화, 몇일내로 최씨 만나서 해결키로’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서류가 돌고 돌아 주빌리은행에 온 것으로 보아 결국에는 누구도 이 빚을 해결하지는 못한 듯 합니다.

원장 위에는 작은 딱지가 하나 더 붙어있는데, 대출을 한지 3년 후인 1986년 12월 법적으로 조치를 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송비용이 4만원 들었고, 1987년 이 비용도 회수하였습니다.

특별히 이 원장을 소개드리는 이유는 한 장의 편지가 함께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보내는 이는 채무자 김씨로, 주소가 여인숙으로 되어있고 받는 이는 채권회사입니다. 1884년 5월 편지를 받았는데, 원장으로 돌아가 살펴보면 한창 빚을 갚지 못하던 때입니다.

 

 

편지를 그대로 옮기면 아래와 같습니다. 오탈자도 그대로 옮기며, 괄호 안은 제가 쓴 해석입니다.

*

총무님 귀하,
신용조합 또는 여러분 모두 안녕하십니까.
제송합니다. 아무 말 없시 짐을 싸 옵거서(옮겨서) 대단이 재송합니다.
나의 사정은 ㅇㅇㅇㅇㅇㅇ 할 수 없시 먼 곳으로 옵게야 할 몸이 대여
신용조합 직원들과 대단한 용서을 빌고
십일시 최ㅇㅇ, 김ㅇㅇ께 이 두 분의 저에 대한 보증인으로 아무말 없시 하시면(보증인에게 아무 피해를 주지 않으시면)
비료서 떠난 몸이라 꼭 양역(양력) 5월 30일자로 일금 오만원이든 삼만원든 달다리 보내드리겠슨니 꼭 약속하고
제 말이었다는 경위에는 보증인께 말을 하여도 조타고 생각 하시고(제가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보증인에게 말씀하셔도 좋고)
그리고 이자은 얼마나 대든 맻게월 이내외 갑겠슨니 그리 알고
제가 ㅇㅇ에서 소리사을 하였지만 지금은 자본 관계로 공장에 취직을 하라고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이 아무쪼록 달달리 돈을 보내줄탠니 보내준직시 영수증과 잔액금을 저거서(적어서) 연락하시대 아직 공장의 주소가 학정치 못하고 하기에 아무쪼록 공장의 취직한 즉시 연락하시와
그날까지 조합직원깨 감사드리면서 이만 주림니다
조합원 김 ㅇㅇ 드림

*

 

급히 거주지를 옮기며 꼭 빚을 갚을 테니 보증인에게 피해를 주지 말 것을 부탁하는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보증인에게 피해가 갈 것이 걱정되어 채권사에 편지를 쓰셨나봅니다.

1985년 7월 마지막으로 13만원을 갚은 것으로 보아, 편지에 약속한대로 몇 번 더 상환을 하셨습니다.

가계부채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일부러 빚을 갚지 않으려는 사람들에 대한 비난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현장에서 목격한 바로는, 어떻게든 빚을 갚으려 안간힘을 쓰다 구석에 몰려 빚을 돌려막고, 생업을 포기하고, 사업장 문을 닫고, 가정이 깨지고, 끝내 포기에 이르러 투명인간처럼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부도덕한 소수 때문에 성실하지만 불운한 다수의 사람들이 오해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30년 전 누군가의 쓰라린 마음이 담긴 종이를 여러분들과 공유합니다.

오늘날에도 거래되는 부실채권 한 장, 한 장 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 눈물이 담겨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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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6T16:50:11+00:00 2018.11.26 16: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