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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격 ① 추락하는 것은 금융이 없다-뉴스타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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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실격 ① 추락하는 것은 금융이 없다-뉴스타파

“4년 전 뉴스타파는 ‘금융의 자격’ 연속 보도를 통해 우리 사회 금융의 민낯을 들여다봤다.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금융사와 금융소비자 간의 불공정한 금융 거래 실태를 밝히고 개혁을 주문했다.
이제 변화의 골든타임이 지났다. 위기는 현실이 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개인, 기업들이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금융의 사회적 역할, 안전망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그 사이 금융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금융의 자격에 걸맞게, 주문했던 개혁 과제들을 잘 이행해 왔을까. 뉴스타파가 ‘금융 실격’ 연속 보도를 통해 다시 한번, 금융에 자격을 묻는다.” – 편집자 주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한지 2년에 접어들고 있다. 재난을 이겨내기 위한 싸움은 아직 한창이다. 완전한 종식 보다 불편한 공생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의 풍경은 지금과 많은 면에서 다를 것이 분명하다. 모든 변화를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 경제적 약자들에게 생길 일은 어느 정도 내다볼 수 있다. 거시 경제를 뒤흔드는 사건, 사고, 재난이 생길 때마다 이들에게 벌어진 일은 한결같았다. 가진 자는 자신의 몫을 붙들어 위기의 파고를 넘었고, 없는 자는 그러지 못했다.’위기가 생기면 불평등이 심화된다’라는 이 명제는 빚이라는 오랜 금융 시스템에 의해 직조됐다. 1997년 IMF 사태, 2002년 카드사태, 2008년 세계금융위기 등 앞서 경험한 거시 경제의 위기에서 빚은 공포의 민낯을 드러냈다. 금융은 서민, 약자들이 가장 고통받는 그 순간 가차없는 독촉장을 보냈다. 많은 사람이 빚 독촉을 감당하지 못하고 추락했다. 한때 우리 사회에 빚을 갚지 못하는 신용불량자가 300만 명(2004년)이 넘었고, 이 가운데 100만 명 이상(2017년)은 무려 12년 넘게 빚의 족쇄를 벗지 못했다. 야반도주와 빨간 딱지, 서울역 노숙자는 금융에 빌린 돈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주는 상징으로 남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우리 사회 경제적 약자들에게 ‘오래된 미래’나 마찬가지다. 무엇인가 하지 않으면 비극은 반복된다. 빚의 지옥으로 추락한다. 1800조 원에 이르는 가계 부채로 서민, 약자들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금융계의 선택이 중요하다. 또 가차없는 독촉장으로 벼랑 끝의 사람들을 떨어뜨릴 것인지, 아니면 이들의 안전망이 되어 다시 일으켜 세울 것인지, 시대는 금융에 묻고 있다.뉴스타파가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 그리고 우리 시대 금융의 밑바닥을 앞서 경험한 경제적 약자들을 만났다. 무엇이 그들을 빚의 지옥으로 몰아넣고, 또 무엇이 그들을 본래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게 막는지 물었다. 이들을 구하기 위해 금융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짚어봤다.

폐업 자영업자 “딸아, 넌 불평등한 세상에 지지 마라”

카메라 앞에 선 심태섭 씨(56세)는 연신 신음을 삼켰다. 볕이 들지 않는 고시원 방, 책상 위에 놓인 파산 신청 서류가 처지를 대신 말한다. 불과 6개월이다. 방송에까지 나가 코로나19를 함께 이겨내자고 사람들을 독려하던 자영업자 사장님은 신용불량자가 됐다.

△ 심태섭 씨는 지난 5월 운영하던 숯불 갈비집을 폐업했다. 금융사들이 유예됐던 대출 상환을 요구하면서 불과 6개월 만에 신용불량자로 추락했다.

심 씨는 2008년 회사를 그만두고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13년간 넘어지고 일어서길 반복하며 자영업에 잔뼈가 굵었다. 코로나19가 확산됐을 때 서울 구로구에서 숯불 고기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전단지든, 오픈 행사든, 온라인 바이럴이든 손님 모으는 것은 자신이 있었다. 직원 3명을 두고 홀 영업에 집중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점차 늘어나면서 장사를 공치는 날이 많아졌다. 12월 대목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지만 진정세를 보이던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상권이 얼어붙었다. 빈 가게에서 직원들과 소주를 나누며 희망을 조금씩 줄여 갔다.평소 3000만 원 수준이던 월 매출은 70% 이상 감소했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 3명이었던 직원을 1명으로 줄였다. 심 씨는 아예 가게에 들어와 숙식을 하고 쉬는 날엔 직접 전단지를 돌렸다. 그래도 소용없었다. 혹시 손님이 올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매일 들여온 생고기는 매일 폐기물로 버려졌다. 매달 임대료 320만 원과 인건비 200만 원이 고스란히 적자로 남았다.  서울신용보증재단에서 소상공인 지원 대출로 3000만 원을 받았다. 그간의 적자를 메우는 데 고스란히 들어갔다. 결과적으로 감당 못할 빚만 늘리는 꼴이 됐다. 최후의 보루였던 임대보증금은 오래 버텨주지 못했다. 지난 5월 폐업을 결심했을 때, 건물주는 보증금이 50만 원 밖에 남지 않았다고 알려왔다.가게를 처분하고 고시원에 들어왔을 때, 남은 건 빚 1억 2천만 원이 전부였다. 폐업이라는 게 자영업자라는 마지막 안전망까지 벗어던지는 의미라는 것은 미처 몰랐다. 정부가 코로나 대응을 위해 자영업자들에게 펼쳐준 보호막, 즉 ‘대출 원리금 상환 유예’라는 보호막이 곧바로 사라진 것이다. 폐업을 하고 자영업자라는 신분이 사라지자 금융사들은 곧바로 원리금 상환을 재개했고 상환일은 매달 촉박하게 돌아왔다. 어떻게든 빚을 갚아 보려 배달 오토바이를 몰았다. 몸이 마음같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 종일을 일해도 다른 배달부 벌이의 절반 밖에 하지 못했다. 그러다 무리해서 계단에 무릎을 찧었다. 시간이 지나도 어색한 걸음걸이는 고쳐지지 않았다. 빚이 몸을 망가뜨렸다.


△ 자영업자 커뮤니티에는 심 씨의 사례와 같이 폐업 후 대출 상환 문제를 걱정하는 글이 연일 올라온다.

바닥 아래에 더 깊은 바닥이 있었다. 건강보험료 15만 원 연체가 시작이었다. 금융의 문이 연이어 닫혔다. 통장이 압류되고 대출 상환이 막혔다. 신용카드 사용이 중지되고 신규 발급도 거절됐다. 직장을 찾으려 해도 필요한 금융 서류를 발급받을 수 없었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전화벨은 쉼 없이 울려댔다. 상환을 독촉하는 추심 전화였다. 뻔뻔해지지 못하는 성격에 말이 궁색하다 보니 통화가 고통스러웠다. 결국 파산을 결심했다. 마지막 비상금 300만 원을 대학생 딸에게 건넸다. 아르바이트하지 말고, 영어 학원을 다니라고 말했다. 자영업자로 고군분투하느라 평소 해준 것이 없는 딸이었다. 자신 역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길을 가게 됐지만,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살아갈 아이가 먼저 생각에 밟혔다.

“있는 사람들의 자녀들이야 코로나 사태가 무슨 상관이겠어요. 그 아이들은 부모가 대장동이든 뭐든 해서 살면 되지 않습니까. 가진 게 없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어떻게 버틸까 걱정돼요. 학교를 제대로 나갈 수 없잖아요. 게다가 부모가 돕지 못하니까 학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거예요. 결국 시간이 지나면 부자들의 아이보다 더 낮은 학력을 가지겠죠. 그래서 딸에게 ‘아르바이트하지 말아라, 영어학원 다녀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 심태섭 / 폐업 자영업자

폐업 자영업자 심 씨를 덮친 ‘빚 폭탄’은 600만 명이 넘는 자영업자들이 마주한 현실이다. 자영업 관련 커뮤니티에는 폐업 이후 시작될 금융권 대출 상환에 대한 두려움이 연일 올라온다. 그렇다고 적자를 늘리며 마냥 버틴다고 답이 있는 게 아니다. 상환 유예 조치는 일단 내년 3월까지만 연장된 상태다. 경기가 회복될지는 미지수지만,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지금과 같은 불황이 계속될 경우,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부채의 늪에 빠질 확률이 크다고 분석했다. 한국은행의 시나리오에 따르면 90만 명이 넘는 자영업 가구가 소득과 자산으로 부채를 감당할 수 없는 적자 가구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구당 3명으로만 계산해도 270만 명이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다.

불법 사금융 피해자 “죽을 것 같은데 그렇게 떠밀어야 하나요”

인터뷰 약속시간을 앞두고 이진수 씨(가명, 36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조금만 더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날은 이 씨의 생일이었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도망치듯 떠난 후, 특별한 날이 아니면 아이를 볼 수 없었다. 일은 새벽에 시작돼 밤이 늦어서야 끝이 났다. 벌이가 적은 대신 배우는 것이 많은 일이었다. 좁은 잠자리에 누워서야 핸드폰 속 아이의 모습을 어루만졌다. 이 생활이 3년째다. 우여곡절 많았던 개인회생 절차는 다음 달이면 끝이 난다.    


△ 이진수 씨는 회생 절차 중 금융의 공백을 경험했다. 불법 사금융 피해를 입고 극단의 선택까지 고민했다.

이 씨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아내와 아이 세 가족 살림을 혼자서 책임졌다. 빠듯한 살림에 보탤 생각으로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몇 차례 수익을 보면서 투자 금액이 불었다. 확실하다는 정보에 은행의 신용 대출도 끌어썼다. 그리고 익숙한 이야기처럼, 매수한 종목은 곤두박질쳤다.구멍 난 생활비를 메우기 위해 소액 대출을 이용했다. 저축은행과 카드사를 주로 이용했다. 10%가 훌쩍 넘는 금리가 부담됐지만 벌이가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돈을 빌린 곳이 늘어나면서 문제가 생겼다. 다중 채무자가 되어 본인도 모르는 사이 신용점수가 떨어졌다. 대출을 거절당하는 일이 생기면서 돌려 막기식 상환에 차질이 생겼다. 결국 금리가 20%가 넘는 사금융에 손을 벌렸다.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6천만 원에 육박했다. 감당할 수 없는 채무에 이 씨는 개인회생 절차에 들어갔다.일단락된 줄 알았던 빚의 수렁은 오히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법원이 책정한 세 식구의 최저생계비는 170만 원 수준이었다. 나머지 월급은 채무 변제에 쓰였다. 그런대로 생계는 꾸릴 수 있었지만 말 그대로 아파도, 사고를 당해서도 안 되는 위태로운 삶이었다. 아이의 치과 치료가 필요했을 때 결국 아슬아슬한 균형이 무너졌다. 남은 생계비로는 치료비를 낼 수 없었다. 급전을 대주는 제도권 금융은 더 이상 없었다. 절박한 마음으로 인터넷 검색창에 대출을 검색했다. 형형색색 반짝이며 급전을 대준다는 대출 광고가 유일한 구원처럼 보였다. 전화벨이 울리고 한번 만나자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벼랑 끝의 삶이 지옥에 떨어진 순간이었다. 대부업자를 만났을 때 말은 달라져 있었다. 현금 100만 원을 빌리기로 했지만 업자는 신용이 부족해 안 된다고 말을 바꿨다. 일단 50만 원을 써보고 1주일 안에 상환을 하면 한도를 늘려주겠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었다. 제 입으로 50만 원을 말해놓고선 쥐여주는 돈은 30만 원이었다. 20만 원은 이른바 ‘선이자’였다. 거래를 취소하려면 출장비 10만 원을 내야 했다. 결국 30만 원을 쥐고 자리를 떠났다. 가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급한 돈을 해결하고 나면 금세 상환 기한이 돌아왔다. 50만 원을 마련하지 못하면 한 주치 이자 20만 원을 내고 상환을 미뤘다. 이런 식으로 3주가 돌아가면 빌린 원금보다 낸 이자가 더 많은 꼴이었다. 연 금리로 환산하면 1000%가 넘는 폭리다. 현행 법정 최고금리는 연 20%다. 이 씨같이 절박한 처지에 놓인 채무자들을 노린 불법 사금융이었다.빚을 제때 갚지 못하면 불법 추심이 이어졌다. 먼저 문자 메시지로 상환 시한을 시간 단위, 분 단위로 알렸다. 하루 전, 3시간 전, 1시간 전, 10분, 5분, 1분. 문자 알림이 채무자의 숨통을  조였다. 시한을 넘기면 점잖던 말투가 거칠어졌다. 그의 입에서 대출 심사 때 받아 간 회사 동료와 가족들의 이름, 연락처가 툭툭 튀어나왔다.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엄포의 강도가 높아졌다.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찾아가겠다는 협박이 이어졌다. 그럴 때면 허겁지겁 다른 사금융을 찾았다. 새로 얹은 빚이 이 씨를 더 깊은 지옥에 떨어뜨렸다.


△ 불법 사금융은 이 씨와 같이 극한에 내몰린 채무자를 노린다. 주 단위로 돌아가는 채무 상환을 연 이자로 환산해보면 금리가 1000%가 넘는다.

상황이 여기까지 이르자 이 씨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있느라 회사 일을 소홀히 했고 업자가 찾아올까봐 한밤중에 잠든 가족을 깨워 급히 내보기도 했다. 결국 회사를 그만뒀고 아내는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갔다. 상환 날짜가 다가오면 이 씨는 괴로움에  거리를 서성였다. 누군가 자신을 때리거나 차 사고를 내주길 바랬다. 술을 마시고 이유없이 자신의 발등을 돌로 내려친 일도 있었다. 합의금이든 치료비든 뭐라도 돈이 나오길 바랬다. 옥상에 올라 바닥을 응시하는 이 씨의 모습을 보고 이웃이 신고를 했다. 자신을 끌어당기는 경찰 품에서 그는 너무 힘들다고 울었다.막다른 길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자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다. 시민단체 롤링주빌리의 도움을 받았다. 이 씨는 망설이다 불법 사금융 업자의 전화번호를 넘겼다.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지는 건 아닐까 두려웠다. 얼마 뒤 시민단체 상담사로부터 문제가 해결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업자에게 전화가 오면 이제는 전화를 받으라고 했다. 전날까지도 거친 말을 내뱉던 업자의 태도는 달라져 있었다. 이 씨의 딱한 사정을 들었노라며 채무 문제를 종결짓자고 말했다. 한때 이 씨를 극한에 몰아넣었던 지옥은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졌다. 불법 사금융으로 진 빚은 변제 의무가 없다. 신고를 당하면 대출금 보다 많은 벌금을 내야 하기 때문에 불법 사금융 업자도 내심 마찰을 꺼린다. 채무자는 보복을 두려워해 혼자 끙끙 앓으며 문제를 키우는 경우가 많다. 이 씨의 사례를 상담한 유순덕 롤링주빌리 상임이사는 사고 친 아이의 걱정에 비유했다. 

아이들이 뭔가 문제 있을 때 아이에겐 굉장히 큰 걱정 근심이죠. 하지만 부모에게 그 문제에 대해 얘기하면 의외로 해결이 어렵지 않은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우리가 보는 사채업자하고 이분이 보는 사채업자가 다릅니다. 이 분에게는 그 사채업자가 거대하고  두려운 존재겠지만, 우리 시민단체에게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아요. 그렇다고 이런 채무 문제가 해결이 쉬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불법 사금융의 책임을 묻는 것이고 사채업자는 이미 이 씨에게서 원금보다도 훨씬 많은 이자 수익을 챙겨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죠. – 유순덕 / 롤링주빌리 상임이사

이 씨가 경험한 빚의 지옥은 개인 회생과 파산에 몰려있는 약 13만 명 채무자(2020년)의 현실이다. 아직 가파른 급등세는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이른바 포스트 코로나의 부채 폭탄이 터질 것으로 예상되는 내년에는 크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회생과 파산 제도는 빚 문제로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을 제도적으로 구제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하지만 이 씨의 사례처럼 실제 개개인의 사정으로 들어가 보면 궁극적인 해법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회생, 파산 절차에 들어가게 되면 개인은 그야말로 금융의 공백 상태에 놓인다. 회생의 경우 면책까지 3년에서 5년, 파산 절차의 경우 길게 1년이 걸린다. 파산 면책 이후에도 7년간은 일부 금융거래가 제한된다. 본인이나 가족이 아파도 안 되고, 사고를 당해서도 안되는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는 셈이다.이러한 금융의 공백은 한계에 놓인 채무자들을 불법 사금융으로 떠밀고 있다. 해마다 적발이 이뤄지는데도 불법 사금융이 근절되지 않는 이면에는 불법 사금융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사금융 이용자는 약 139만 명, 대출 잔액은 14조 5천억 원에 이른다. 이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관리를 받는 합법적인 대부 업체의 대출 규모이고, 불법 사금융 시장은 그야말로 깜깜이 상태다. 약 200만 명이 약 42조 원 규모의 불법 대출을 이용하고 있다는 추정치(2019 불법 사금융 실태조사)가 있을 뿐이다.

16년간 신용불량자 “진짜 무서운 것은 헤어나올 길을 모르는 것”

우연이었다. 취재진의 전화를 받기 직전, 진성현(가명, 54세)는 16년 동안 짊어지고 다니던 부채 관련 서류를 찢어버렸다. 혹시나 필요할지 모르는 서류만 사진으로 찍어 남겼다. 보이지 않는 빚의 족쇄를 끊어낸 그만의 의식이었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 얻은 새 삶, 잃었던 이름을 이제야 되찾았다. 


△ 진승현 씨는 2005년 신용불량자가 된 이후 16년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파산 신청도, 신용회복위원회도 장기 채무자인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했다.

진 씨는 소위 잘나가는 사업가였다. 1998년 IMF 사태 직후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30대의 나이에 꽤 큰돈을 만졌다. 2000년대 초반 그의 사업체 매출은 80억 원 규모였다. 청년 사업가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금융권 대출을 끌어가며 사세를 키워나갔다. 그러다 순항할 줄 알았던 사업이 암초에 부딪쳤고 돈의 흐름이 막히기 시작했다.사업이 어려워지고도 빚만은 성실하게 갚았다. 10억 원에 이르는 거래처 빚이나 사인 간의 채무는 대부분 상환했다. 평소에 신의를 지켜온 덕에 개인 채권자들은 어느 정도 원금과 이자를 조정해 줬다. 하지만 금융사는 달랐다. 은행의 담보대출 2억 2천만 원을 상환 계획대로 절반 이상 갚아왔지만 구제의 기회는 없었다. 2005년, 그렇게 청년 사업가는 자신의 이름을 잃고 신용불량자가 됐다. 제 이름을 가지고는 어떠한 금융거래도 할 수 없었다. 사업도, 일도 할 수 없었다.임의 경매와 이른바 ‘빨간 딱지’, 그리고 가혹한 채권 추심 전화는 벼랑에 몰린 그의 삶을 또다시 추락시켰다. 어린 아이가 있는 집에 채권추심원들이 들이닥쳐 빨간 압류 딱지를 붙였다. 살던 집은 그 자리에서 바로 경매에 부쳐졌다. 가족의 남은 재산까지 샅샅이 뒤지는 통에 아내와는 서류상 이혼을 했다. 모든 것을 다 토해냈지만 빚 독촉은 멈추지 않았다. 어제는 A 채권추심업체였는데 오늘은 B 채권추심업체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지러운 변화 속에 진 씨는 한동안 빚의 수렁을 벗어날 생각을 하지 못 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채권추심 전화의 빈도가 줄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어 프리랜서 일도 시작했다. 빚의 족쇄를 벗고 이름을 되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체 어디에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 심지어 자신의 채권이 어디에 흘러가 있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었다. 보통 금융회사들은 연체가 발생한 부실채권을 헐값에 채권추심업체에 넘기는데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고 나면 정작 채무자는 자신의 채권이 누구 손에 들어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다시 채권추심을 해올 수 있다는 공포감에 매일 관련 서류들을 가방에 넣어서 다닐 뿐이었다. 다시 정상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진 씨는 막막한 현실에 다시 고통받았다.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파산 광고를 보고 비용 100만 원을 마련해 법무사를 찾아가 봤다. 뭐라도 할 테니 파산 면책만 받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법원은 그의 파산 신청을 기각했다. 절박한 처지를 보고도 중간에서 돈만 챙긴 법무사가 원망스러웠다. 지난해엔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아가 봤다. 정부 기관이니 어떻게든 신용불량자 신세를 벗어날 해법을 안내해 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상담원의 대응은 원론적인 수준에 그쳤다. 채권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장기 채권에 대해서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결국 제 손으로 빚의 족쇄를 끊어내지 않으면 누구도 도와줄 수 없는 문제였다.


△ 금융회사들은 연체가 발생한 부실채권을 헐값에 채권추심업체에 넘기는데 이런 일이 몇 차례 반복되고 나면 채무자는 자신의 채권이 누구 손에 들어가 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시민단체 롤링주빌리의 도움을 받아 채권의 행방을 쫓았다. 마지막 추심이 있었던 업체에 전화를 걸어 채권의 행방을 물었다. 채권은 4차례나 회사를 옮겨간 상태였다. 끝내 진 씨의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회사를 찾아냈다. 시민단체에 안내받은 대로 소멸시효 완성 여부를 물었다. 별도의 채권 소멸시효 연장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금융 채권 소멸시효는 보통 5년, 진 씨의 채권은 이미 10여 년 전 효력이 사라진 상태였다. 16년이나 이름 없이 살아온 세월이 허망했다. 채권추심업체로부터 더 이상의 추심이 없을 것이라는 구두상의 약속을 받고 전화를 끊었다.곧장 새마을금고를 찾아 통장을 개설했다. 빚 문제로 오랜 기간 씨름을 해온 시중은행은 아직 꺼려졌다. 그간 남의 명의를 빌려서 하던 일도 정식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새로 사는 느낌이었다. 잃었던 이름을 되찾았다. 30대 청년은 그 사이 중년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한때 12년 넘게 빚을 갚지 못하는 장기 신용불량자가 100만 명이 넘었을 정도로 우리 사회 빚의 족쇄는 견고하다. 법적인 채권 소멸시효가 있지만 채권을 가진 금융사, 채권추심회사가 법원의 지급명령과 소송을 통해 무기한 연장할 수 있다. 실제 5년 이상 연체된 금융사 채권 약 20조 원 가운데 40%가량이 소멸시효가 연장된 것(2017년)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설사 채무자가 사망한다고 해도 상속자가 있는 경우 그 채무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된다. 우리 사회에서 강도, 살인보다 금융사에 빚을 지는 것이 더 큰 죄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금융의 안전망 역할 절실

추락하는 서민, 저신용자들을 위한 금융은 없다. 전문가들은 금융계가 이들의 안전망이 되지 않으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비극이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1997년 IMF 사태, 2002년 카드사태, 2008년 세계금융위기 등 앞서 경험한 거시 경제의 위기가 수많은 서민과 저신용자들을 나락으로 떨어트린 것과 같은 일이 또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시보다 훨씬 커진 가계부채의 규모와 더 취약해진 가계의 건전성을 감안하면 비극의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오랜 고객들을 끝내 빚에 지옥에 내몰아서 금융사 스스로든 사회 전체로든 득이 될 것이 없다. 수십 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길러낸 인적 자원을 망가뜨리면 사회 전체의 생산 능력이 저하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금융의 성장 동력에도 악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인적 자원이 망실되지 않도록 지원하고 계속해서 경제활동을 하게 만들어야 부의 선순환이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 국내 4대 금융 지주사는 올 3분기까지 총 12조 2천억 원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34.5%나 증가한 수치다.

그럼에도 금융이 빚이라는 시스템을 묵묵히 돌려가는 배경에는 ‘돈을 갚지 않으면 팔이든 다리든 잘라내야 한다’라는 중세적인 사고관이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사들은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고 말한다. ‘마음대로 돈을 빌려쓰고 갚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만연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덕적 해이를 저지를 몇 사람이 두려워 선량한 재난의 피해자들까지 야만의 구조에 몰아넣는 것은 합리적이지도 생산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않다. 현대 금융의 채무 계약은 이 같은 중세적 세계관을 탈피한 지 오래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채무 계약 자체에 상대가 ‘운이 좋지 않아서’ 빚을 갚지 못할 확률이 계산돼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률은 금융이 가산금리를 책정할 때 미리 반영한다. 채무자가 일정하게 부담하는 이자의 경제적 역할은 한마디로 보험료라는 것이다. 이점을 충분히 알고도 우리의 금융은 ‘상대가 빚을 갚지 못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식으로 서슴없이 빚의 족쇄를 채우고 있는 셈이다.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정부 당국의 금융 정책도 금융계의 이같은 낡은 사고방식을 탈피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 일시적인 상환 유예 조치나 고금리 대출을 중금리 수준의 대출로 전환시켜주는 것은 오히려 언젠가는 터질 부채 폭탄을 키우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선 경제 위기에서 재벌 계열사들에 단행했던 적극적인 채무 조정 방식을 한계 채무자들에 대해서도 적용하는 방법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적자금을 투입해 한계 채무자의 대출 원금 일정 부분을 탕감하고, 포스트 코로나의 피해를 극복하고 다시 생활 일선으로 복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을 살리는 대책이 될 수 있다고 주문한다. 유순덕 이사는 이 같은 채무 조정 대책이 논의될 때마다 나오는 도덕적 해이 논란에 대해 이렇게 일침 한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를 봤어요. 장기 채무자들에게 456억 원으로 뭐하고 싶냐고 물으니까 그분들 모두 1번이 빚 정리라고 말해요. 이분들은 빚을 안 갚으려고 하는 게 아니라 못 갚는 겁니다. 그런데도 금융계는 여전히 이들이 빚을 안 갚으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에 대한 대책을 내놓을 생각을 안 해요. 지옥이든 뭐든 그냥 방치하는 거죠. 너희들 책임이고 ESG든 뭐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아니라고 말해요. 글쎄요. 코로나19사태도 개인의 책임일까요? 코로나 사태에서도 어마어마한 수익을 본 금융사가 이득 본 것의 0.1%라도 극한의 서민들을 위해 사회적 책임을 분담해야 하지 않을까요. – 유순덕 / 롤링주빌리 상임이사

국내 4대 금융 지주사는 올 3분기까지 총 12조 2천억 원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34.5%나 증가한 수치다. 금리 인상의 수혜 속에 금융계는 내년에도 사상 최고 실적을 연일 갈아치울 것으로 전망된다.

출처:
금융 실격 ① 추락하는 것은 금융이 없다 (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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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9T17:08:30+09:00 2021.11.29 15: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