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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오마이뉴스] 박근혜 정부의 변심 항간의 ‘음모론’, 새겨 들어라

[주장] ‘빚내라’던 정부, ‘빚갚으라’ 말 바꾼 이유

정부 부처 관리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 가계부채를 관리할 것인가 부동산 시장을 살릴 것인가. 양날의 칼과 같은 문제를 두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부처들이 모여 정책 방향을 결정한다. 가계부채 총량을 줄이고 위험을 적극적으로 관리하자니 부동산 경기의 침체를 감수해야 한다. 부동산 경기를 살리려니 가계 빚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정부는 처음부터 답을 정해 놓고 협의를 진행했다. 말이 협의지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절대적 신앙을 바탕에 깔아놓은 채 협의 시늉만 한 셈이다. 속내를 들키지 않고 대중을 설득할 만한 결정적인 구호가 필요하다.

가장 그럴 듯한 방법이 현재의 가계부채 수준은 ‘관리 가능하다’라는 믿음을 유포시키는 것이다. 가계부채의 70%가 중상위 계층에 몰려 있으니 충분히 상환 가능한 사람들이 빚을 지고 있을 뿐이라고 낙관한다. 연체율도 안정되어 있고 자산 가치에 비해 부채 규모는 상대적으로 적다고 통계 수치를 근거로 내세운다.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겠지만 현재의 가계 빚은 괜찮다고 민심을 타이른다.

좀 더 빚을 내도 관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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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완화된 이후 한 달간 금융권 주택담보대출이 3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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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부의 관리 가능하다는 인식에는 ‘좀 더 빚을 내도 관계없다’는 공격적인 속내가 숨겨져 있다. 슬그머니 부동산 시장의 거래 정상화라는 구호를 제시하며 금융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내 든다. 가계부채가 생각보다 위험하지는 않다는 이야기가 빚을 더 내서 집을 사라는 시그널로 바뀐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십 년간 부동산 시장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신념을 학습해 왔다. 부동산 가격은 늘 오른다. 부동산이 재테크 수단으로 가장 유의미하다. 부자가 되려면 부동산에 투자해야 한다. 단숨의 인생역전이란 부동산 투자에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신념은 수십 년간 보고 듣고 겪으면서 체화되어 오면서 때로는 박탈감과 허탈함을 야기하고 급기야 성공적인 삶의 기준이 부동산 소유 유무에 의해 결정난다는 선망으로 굳어져왔다.

부동산 시장 가격 상승 기대심은 신앙이나 다름없다. 단 한 번도 이 신념이 배반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물론 언제나 시장에는 여러 우려들이 제기되었다. 지나치게 과열되었다라든가 여기서 더 오른다면 그것은 세상이 미친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문제의식이다. 이렇게 상식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부동산 투자에 동참하는 것을 거부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순진했다고 여기게 되었다.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다는 뉴스는 들려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은 참여정부 말에 잠깐 시장의 광란을 진정시키는 정도가 시행되었을 뿐 언제나 부동산 시장에 호재였다. 특히 지난 정부시절 부터는 참여정부 당시 시행되었던 모든 안전장치들을 야금야금 해제시키며 무력화시키기 시작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비껴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LTV(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율)를 완화시키면서 사람들을 다시 부동산 투자 대열로 끌어들였다. 이 두 제동장치는 빚을 내서 집을 사더라도 자산 가치의 절반 범위 내에서, 버는 돈에 비해 원리금 지출 부담이 지나치지 않을 범위 내에서만 하도록 한정지었다. 과도한 빚 때문에 가계 재무 구조가 악화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 마련된 안전장치이다.

이를 완화시켰다는 의미는 빚을 더 내서라도 집을 사라는 시그널이고 이는 사람들에게 부동산 시장이 다시 꿈틀댈 것이란 두려움과 기대를 동시에 갖도록 만들었다. 특히 지난해 8월 금리를 전격적으로 1%대로 인하하면서 이 두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정부 관료들이 모여 이런 결정을 내린 데에는 앞서 말한 대로 가계 부채가 ‘관리 가능하다’라는 전제를 내세웠다.

정부의 “관리 가능하다”는 말은 대체 무슨 뜻일까? 사람들이 빚으로 고통받지 않고, 빚에 허덕이며 극단의 선택을 하지 않으며, 빚 독촉 때문에 인권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하는 관리일까? 아니면 은행을 비롯한 금융사들이 망하지 않게 하는 것을 의미할까?

후자라면 경제학자들조차 여러 지표들을 종합해 근거가 있다고 하니 정부의 주장이 일단은 맞다고 해두자. 그러나 정부의 “관리 가능하다”는 말의 담긴 실제 의미가 사람들이 죽어나가든 말든, 공공연하게 인권이 침해되든 말든, 금융사만 안전하면 정부의 할 일은 없다는 것인가?

금융사들의 건전성 지표에 별다른 징후가 없으니, 그러니까 연체율도 안정되어 있고 부실비율도 높지 않으니 개인들의 빚은 늘든 말든, 가계부채 비율이 가처분 소득 대비 160퍼센트 넘어 전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으로 악화되든 말든 정부는 금융사가 아프지 않는 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을 태세이다.

물론 간혹 ‘안심전환대출’ 같은 대책을 내놓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가 LTV, DTI 등의 규제를 완화해 빚을 늘리던 가운데 유일하게 내놓은 채무자 대책이었던 안심전환대출은 그야말로 또 하나의 엉터리 메르스 대책과 같았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분노했다. 30퍼센트가 넘는 고금리에 신음하는 사람들은 제쳐두고 4퍼센트도 안 되는 저금리로 담보대출을 갚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었다.

마치 병든 사람들은 모르겠고 건강한 사람들이 병들지 않게 영양제를 주겠다는 식이다. 물론 건강한 사람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일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병든 사람들이 적지 않고 그들은 절실하게 정부의 대책을 필요로 하는데 정작 그들을 외면하면서 건강한 소수를 위한 정책만을 고집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부의 부조리한 정책 기조는 심지어 실효적이지도 않다. 가계 부채는 마치 정부의 자신감을 비웃기라도 하듯 스스로 덩치를 키워버린다. 지난해 규제를 대폭 완화했던 8월 이후 가계부채는 그야말로 폭증을 이어왔다.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춰주고 금융위가 대출 규제를 완화해주고 기재부를 비롯한 여러 부처에서 온갖 사회 문제에 빚으로 해법을 일관하면서 만들어진 결과이다. 국토부는 다른 모든 부처들이 가계 부채 심각성을 괜찮은 것으로 포장하는 사이 부동산 시장 경기 활성화를 기대했으나 큰 실효성은 없었다. 그야말로 경기는 살아나지 않았고 ‘빚만 늘었다’.

정부의 무능이 빚어낸 대형사고 ‘가계부채’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감지한 것일까? 느닷없이 태도를 바꿔 대책을 제시했다. 어떤 이는 국정원 사태를 덮기 위해 황당한 정책을 내놓아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음모론을 농담삼아 던진다. 그 만큼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다. 마치 국민들이 어디까지 정부의 뒤통수를 맞아줄까 시험하는 듯하다. 일년 만에 ‘빚내쓰라’던 구호를 ‘빚갚으라’는 것으로 뒤집었으니 말이다.

지난해 한국은행 조사결과 원리금 상환비율과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이 매우 위험한 ‘고위험’ 가구 수가 112만이다. 고령과 절대적인 저소득 등의 사유로 도저히 빚을 갚지 못할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114만 명이고 오랜 기간 추심에도 빚을 갚지 못해 장기 연체 상태인 채무 취약계층이 350만 명이다. 금융회사 3군데 이상에서 돈을 빌려 빚 돌려막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328만 명이다.

사태가 이 지경으로 흐를 때까지 한 번도 꺼내 들지 않았던 정책이 느닷없이 제시되었다. 상환 능력에 맞춰 대출을 규제하고 상환 방식도 이자만 갚는 것에서 원리금으로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지난 22일 발표한 대책에는 정책의 내용만 있을 뿐 제도는 없다. 여전히 담보인정비율과 소득 제한 제도는 기존의 완화된 내용을 유지한다. 은행 자체적으로 이런 대출 영업을 하도록 지도하겠다는 것이 대책이다.

정부의 이번 대책은 가계 빚이 매우 심각한 단계임을 수용했다는 것에 머문다. 심각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지는 보이지 않은 채 만에 하나 문제가 커질 경우 자율적으로 빚을 키워온 금융권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위한 면피용 장치만 마련한 듯 보인다. 모든 대형사고에 개인적 일탈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정부의 일관성 있는 무책임은 금융위기 상황 앞에서도 여전하다.

이제 심각한 가계빚은 개별 가정에서 각자도생의 길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각자도생의 첫 번째는 정부의 대책에 기대 빚을 늘리는 우를 범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이는 지금 단계에서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각자도생하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정책 방향과 다소 다른 결정과 선택이 필요함을 강조할 수밖에 없다.

신용카드도 줄이고 최대한 소비지출을 줄여나가며 빚을 늘리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할 때이다. 혹시라도 빚을 갚지 못할 경우 지독한 추심에 그대로 노출되어서는 안 되며 정부가 아닌 시민단체 혹은 지방정부의 대책들을 살펴 봐야 한다.

정부의 총체적인 무능이 빚어낸 여러 형태의 참사, 우리는 세금은 내지만 지금의 정부에게서 그 어떤 대안을 기대할 수 없다는 냉험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만이 유일하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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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5T11:56:12+09:00 2015.07.27 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