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때문에 죽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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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펀딩] 5화, “당신의 빚이 소각되었습니다”

“4년 전 은행들이 구제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미국의 월가를점령하다Occupy Wall Street, OWS 팀이 2012년 시민들의 빚 155억 원을 소각하는 운동을 벌였다. OWS 팀은 2008년 15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고 그 여파로 압류 주택이 폭증하는 등의 금융위기가 벌어진 2008년에 만들어진 시민단체다.

미국의 OWS(Occupy Wall Street) 활동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당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빼앗긴 시민들과 달리 금융 재벌들은 여전히 상상을 초월하는 천문학적인 보너스를 챙기고 있었다.
그 보너스는 정부에서 시민의 세금으로 퍼붓고 있던 구제금융의 일부였다. 금융위기를 책임지기는커녕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시민의 세금으로 탐욕을 멈추지 않았던 그들을 향해 시민들이 분노를 터트렸다.
그 유명한 구호 “우리는 99퍼센트다”를 외치며 1%를 위해 작동하는 월스트리트에서 장기간 노숙 시위를 전개하기도 했다. 이들의 월가를 향한 분노는 미국 드라마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이다.
가령 〈컨티넘〉이라는 드라마에서는 테러리스트 조직이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와 월가의 최고 경영자를 납치해 IS와 같은 방식의 동영상을 공개한다. 협박이 전제되어 있지만 월가의 최고 경영자는 동영상을 통해 ‘나는 범죄자이다. 투자자의 돈을 갈취했고 수익을 조작했다.’라고 고백한다.
이러한 고백은 협박이 전제되어 있음에도 여전히 금융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듯한 리얼리티가 느껴진다. 아마도 미국민들의 상당수는 월가의 최고 경영진에게 이런 고백을 듣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2012년 OWS팀은 운동 1주년 기념으로 롤링주빌리Rolling Jubilee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주빌리는 일정 기간마다 죄를 사해준다는 의미의 기독교 전통이다. 우리나라 말로 희년운동이라 번역되는데 주로 부채 탕감과 노예 해방, 토지 반환 등이 희년, 즉 주빌리 운동의 내용이다.
OWS팀은 “교육, 의료, 주거 등과 같은 삶의 기본적인 요소 때문에 서민들이 빚을 져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즉 롤링주빌리 프로젝트는 약탈적 채무 시스템이 우리의 가정과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폭로하고, 시민들이 그러한 채무 시스템에 빠지지 않도록 교육 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은행들이 채권을 헐값에 팔아치우면서도 서민들에게 채권의 2차 시장에서 채무 전체에 대해 독촉받도록 방치하고 있는 현실을 폭로하고자 시작했음을 재차 강조한다.
OWS팀은 2012년 한화 155억 원 가량을 소각하고 다시 2014년 40억 원 가량의 대학생 학자금 빚을 탕감했다. 그리고 이제는 채권을 매입해 소각하는 롤링주빌리 운동에 이어 직접 채무자가 부채 상환을 거부하는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일명 strikedebt 이라는 캠페인으로 코린튼대학 졸업생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학자금 대출에 대해 상환 거부 운동을 시작했다.
미국의 이러한 활동은 그간 채무자에 대해 가혹하기로 으뜸이라고 할 만한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적용가능해 보였다. 부실채권이 대부업체들에서 떠돌아 다니고 있기 때문에 대부업체들을 통하면 충분히 채권을 확보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2014.04.13 한국 롤링주빌리 빚탕감 프로젝트 운동 제안 행진

“대부업체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부업체의 관리감독을 진행하는 지자체 공무원들과 함께 대부업체 설득작업에 나섰다. 그 결과 몇 개의 대부업체들에게서 10년 이상 지난 생계형 소액 채권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7군데 이상의 대부업체들을 떠돌아 다닌 채권 혹은 대부업체 스스로도 받아내기에 어렵다고 판단되는 채권들을 기부 방식으로 확보 했다.
지난 한해 이러한 채권들을 51억원 가량 모아서 소각해 버렸다. 미국의 경우 2693명의 채무자가 롤링주빌리 운동으로 빚 탕감을 받을 수 있었다. 미국의 롤링주빌리 팀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빚은 개인의 문제라고 여겨왔고 부끄러워해 왔다. 그러나 미국인의 76%가 빚을 지고 있다면 이상하지 않은가?‘라며 빚의 사회적 문제를 제기한다.

“빚을 질 수 밖에 없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일부의 사람들이 소득을 뛰어넘는 생활을 하느라 빚을 지게 된 것이 아니라 빚을 질 수 밖에 없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폭로하면서 사람들이 교육과 의료, 주거와 같은 삶의 기본적인 요소 때문에 빚을 지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삶의 기본적인 요소 때문에 갖게 된 빚으로 고통 받는 사이 ‘채권자들은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암흑속의 투기 시장에서 몇 푼의 가격으로 채권을 거래 하고 있는 현실’을 폭로한다.

“단순히 빚 탕감 해주는 게 목적이 아니다”

시민 모금으로 부실채권을 사들여 소각하는 행사를 갖게 된 배경은 단지 모금으로 다른 시민의 빚을 탕감해 주기 위함이 아니다. 그보다는 바로 이러한 암흑속의 채권 거래 시장을 폭로함으로써 금융시장이 지나치게 약탈적인 구조로 운영되고 있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폭로한다.
그들은 “채무자에게서 모든 빚을 받아내려는 채권 매입자의 잘 알려지지 않은 암흑 속의 투기 시장에서 은행들은 단 몇 페니로 채권을 팔아버린다. 롤링주빌리는 채권을 구입해 이 시장에 개입하고 채권 매입자들의 손에 채권이 들어가지 않도록 막으며, 구입한 채권은 그대로 버린다.
우리는 이익을 보려고 이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돕게 하고 약탈적 부채 시스템이 우리의 가정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알리고자 뛰어드는 것이다. 99퍼센트를 위한, 99퍼센트에 의한 구제인 것이다”라고 역설하고 있다.
앞선 칼럼에서도 여러 사례를 통해 밝혀 왔지만 우리나라의 부실채권 거래 시장 또한 15년 이상 된 장기 채권조차 헐값에 거래되고 있다. 거래 가격은 헐값이지만 채무자에게는 채무 원금은 물론이고 그 오랜 기간동안의 연체이자까지 추심하고 있었다.
상환 능력이 상실되었을 경우 ‘도망치는 것’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 채무자들이 사회에서 퇴출되는 사이 채권은 금융회사에서 여러 대부업체들로 마구 되팔리고 있었다.
물론 금융채권들은 5년이라는 소멸시효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채권의 소멸시효기간이 만료되었다 하더라도 채권자는 소송제기, 경매신청 등의 법적 권리 행사는 할 수 있다. 채권자가 소멸시효가 완성된 채권에 대해 소송제기, 경매신청 등의 권리 행사를 한 경우 채무자가 이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채권은 다시 살아난다.

“오늘 내로 만원만 갚으면 빚의 절반을 깎아 주겠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채무자가 채무 변제를 일부라도 하게 되면 채무 변제의 의사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어 채권이 살아난다. 이런 이유로 상담센터로 걸려오는 민원전화에는 10년 전의 채권에 대해 오늘 내로 만원만 갚으면 빚의 절반을 깎아 주겠다고 한다는 내용도 있다.
추심원의 말대로 만원만 입금하면 바로 소멸시효 지난 채권이라도 채무자가 갚을 의사가 있음을 표시한 것이기 때문에 채권이 살아난다.
그러나 오랫동안 빚을 연체하고 빚 독촉을 받은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법원에서 날아온 우편물을 거의 열어보지 않는다. 채권자 입장에서는 법원에 청구행위만 해도 채무자가 아무 이의 제기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소멸시효를 중단시키기가 쉬울 수 밖에 없다.
이렇게 집요하고 치밀한 방식으로 오래된 채권조차 추심이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채권의 거래 시장이 미국의 롤링 주빌리 팀이 지적한 데로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암흑속의 투기 시장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좀비같은 채권 시장”

롤링 주빌리 운동을 처음 제안한 미국의 뉴욕대 앤드류 로스 교수는 이러한 채권 시장에 대해 ‘좀비 채권 시장’이라 지적한다. 채무자들은 교육비와 의료비로 생겨난 빚으로 삶과 죽음을 오가는데 정작 채권은 끝까지 살아서 좀비처럼 사람을 괴롭힌다.

2014.09.12 성남시 빚 탕감 프로젝트 출범식

바로 이렇게 채권의 2차 시장에서 좀비처럼 떠도는 채권들을 매입하거나 기부 받는 방식으로 채권 소각운동이 이뤄졌다. 이 운동은 성남시와 서울시 등의 지자체와 시민단체에서 채권을 확보하고 종교단체 등과 함께 모금 및 시민 홍보 활동을 진행하는 것으로 이뤄졌다. 792명의 빚 51억 3천만원이 그렇게 사라졌다.
우리는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채권을 소각한뒤 개별 채무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당신의 채권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 빚을 갚지 않으셔도 됩니다. 당신의 빚은 소각되었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미국에서는 롤링주빌리 팀의 이러한 편지에 수많은 사람들이 감사의 답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주소지도 불분명한 채무자들에게 이 편지가 정확히 도달할 리가 없었다. 800여 통을 보냈지만 전화 혹은 편지로 답이 온 것은 10여통에 불과하다.

“당신의 빚이 탕감 되었습니다” 편지 발송

“당신의 빚이 소각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과 채무자들에게 이 운동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우리가 상식으로 여겼던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믿음이 약탈적인 금융구조를 정당화 시켜주고 있었음을 자각할 수 있다.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하지만 이것이 돈을 빌려준 금융권의 책임을 제외한 채 강요되어서는안된다. 돈을 빌려준 금융권의 책임을 정확히 따져 묻지 않는 가운데 지나치게 비정한 사업이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금융권의 책임을 묻는 것은 가혹하게 채권 추심을 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허용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금융회사들이 채무자에게 빌려준 돈을 잘 회수하기 위해 가혹한 추심 대신 채무 상환을 잘 할 경우 여러 인센티브를 줄 수 있는 영업환경이 되어야 하지 않은가.

채무 상환이 어려워진 고객에 대해서도 채무 상환이 가능한 조건으로 rescheduling 해 주는 것이 상식이다. 채무 재조정을 해주기는커녕 헐값에 대부업체에 팔아버리고 있는 행태를 문제 제기 해야 한다.

만약 금융권에서 대부업체에 채권을 팔아버리는 대신 적극적으로 채무 재조정을 해준다면 빚을 잘 갚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근로 동기를 갖게될 것이다.

“채무자들도 신용 추락을 원하지 않는다”

여전히 금융권에서는 채무 재조정이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것이라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채무자들은 채무 변제를 회피함으로써 갖게 되는 불이익과 신용신분의 추락을 원하지 않는다. 채무자들 대대수가 빚을 원활히 갚음으로써 갖게되는 후련함과 신용사회의 신분 유지를 훨씬 더 선호할 수 밖에 없다.
대부업체에 팔려나간 채권을 소각해 주었을 때 한 채무자에게서 온 답장의 내용은 이를 증명한다.

‘당신의 빚이 소각되었습니다’라는 편지를 받고
20여년간 쫒아다닌 빚이 사라졌습니다.

20대에 생긴 400여만원의 빚이
40대에 1900만원이 되었고
갚아도 갚아도 빚은 늘었습니다.

빚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저는 이제 안정적인 일을 갖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대부업체에 채권을 넘기기 보다 채무자의 형편에 맞게 기다려주는 상환 프로그램을 진작에 적용해 주었다면 그는 20여년의 시간을 다르게 살았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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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3T16:51:24+09:00 2015.04.02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