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때문에 죽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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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펀딩] 2화, “전 남편 빚? 우린 댁의 사정 몰라요”

“어느날 갑자기 내가 알지도 못하는 빚에 대해 독촉을 받기 시작했어요. 2000년 7월에 지금은 헤어진 전 남편이 제 명의로 자동차 담보 대출을 받았나봐요. 원금이 450만 원인데 연체이자까지 붙어서 1600만 원에 대해 갑자기 독촉을 하기 시작한 거에요.”
가난한 사람들의 빚에는 억울한 빚이 상당히 많이 껴있다. 본인이 일으킨 빚이 아니라 마찬가지로 가난한 형제들 혹은 이웃들과 배우자를 대신해 빚을 짊어지고 고통을 받는다.

44세의 이미옥 씨(가명) 또한 3년 전 가정 폭력으로 이혼한 전 남편이 일으킨 빚을 여러 차례 갚아야 했다. 2년 전에도 이혼과 동시에 대부업체에서 날아온 빚이 300만 원씩 두 번 있었다고 한다.

본인은 자필서명을 해준 적도 없을 뿐 아니라 그 빚의 정체도 모르고 있었지만 대부업체는 아랑곳 않고 가혹하게 독촉을 했다.

“아줌마, 우린 댁의 사정은 몰라요”

“사정은 남편에게 물어봐야죠. 우리는 이미옥님 이름으로 된 채권이 있다니까요.”

남편에게 물어봐야 소용없다. 살면서 반복적으로 이뤄진 가정 폭력으로 여러 차례 같이 경찰서를 드나들 수 밖에 없었다. 폭력이 줄어들지 않는 가운데 이혼조차 해주지 않는다고 고집을 부리는 남편이었다. 하는 수없이 마지막 폭력에는 합의를 해주지 않아 남편이 구치소 신세까지 지게 되었다. 이후 합의를 조건으로 가까스로 이혼할 수 있었다.

이런 남편에게 결혼 생활 당시 자신의 이름으로 된 빚이 어떻게 된 일이냐 물어봐야 돌아올 답은 뻔하다. 할 수없이 가정 관리사 일을 하면서 어렵게 번 돈으로 1년간 겨우 갚았다.

이제 한숨을 돌리고 적은 소득이라도 쪼개서 두 아이 교육비라도 모아볼까 생각하던 차였다.

이번에는 15년 전의 빚이 연체이자까지 붙어 날아왔다. 자동차를 담보로 캐피털사에서 빌린 채권인데 자동차는 이미 캐피털에서 담보권을 실행한 뒤였다.

상식적으로 담보권을 실행하면 빚이 상계 처리되어야 하지만 금융사들은 담보권을 실행할 때 대출의 원금부터 상계하지 않고 연체이자와 법정비용 등을 먼저 제한다. 차량 등의 담보물은 현금회수를 빨리 할 목적으로 가급적 헐값에 처분하기 때문에 연체이자와 법정비용을 먼저 제하고 나면 대출 원금이 부분적으로 남게 된다.

이미옥 씨의 경우 남편이 담보대출뿐 아니라 할부금도 제대로 갚지 못해 담보 대출 원금이 고스란히 남아 버린 경우이다. 연체가 오래되자 캐피털사는 그 대출 채권을 계속 보유하지 않았다.

“캐피털에서 돈 빌렸다는데 독촉은 대부업체에서 해왔어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왜 대부업체에서 갚으라고 하는 것이냐고 물으니 캐피털사에서 대부업체에 채권을 넘겼다는 겁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이런 것이 가능한 건가요?”

3개월 이상 연체된 채권을 부실채권이라 한다. 금융사는 부실채권을 일정 기준 이상 보유하게 되면 금융감독 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는다. 이러한 제재를 피하기 위해 금융사들은 부실채권을 적극적으로 추심하다가 추심이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대부 업체등에 팔아버린다.

금융사는 대부업체에 채권을 판 뒤 회계 장부에서 이 채권에 대해 삭제한다. 한마디로 그 채권을 열심히 추심함으로써 회수하게 될 재산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헐값이다”

놀라운 점은 금융사들이 대부업체에 채권을 팔아 치우는 가격이 우리가 상식적으로 상상하는 수준을 뛰어 넘는 ‘헐값’이라는 데에 있다. 마치 팔다 남은 물건들이 이런 저런 할인 시장으로 땡처리 되듯이 빚도 헐값에 땡처리되고 있다.

금감원의 2012년 12월 발표에 따르면 은행과 카드사, 캐피탈사 등 제도권 금융회사가 대부업체에 채권을 넘겨준 고객이 76만 명에 달한다. 금액기준으로는 9조 원을 넘는다.

당시 대부업체들이 제도 금융권에서 사들인 부실채권의 가격은 5.7%에 불과했다. 가령 100만 원짜리 채권이라면 연체 기간에 따라 다르지만 5% 전후 즉 5만 원에 매입했다는 이야기다.

5만 원에 사들인 채권으로 대부업체는 원금 100만 원은 물론 연체이자 및 법정비용까지 기간에 따라 1000여만 원 이상도 받아낼 권리를 갖는다. 만약 이자는 차치하고 원금만 제대로 추심해서 받아낸다 해도 94.3% 남는 장사이다.

예를 들어 1000만 원짜리 채권을 57만 원에 사서 1000만 원 전부를 받아낸다면 943만 원이 남는 대박 사업이 된다. 이런 이유로 인터넷에서 부실채권 투자, 일명 NPL(Non-performing Loan)이 재테크의 한 방법으로 소개되어 인기를 끌고 있을 정도이다.

"전 남편 빚? 우린 댁의 사정 몰라요"

채권이 사고 팔리는 것도 일반인들의 상식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인데 거래가격은 더욱 충격적이다. 물론 채권시장에서는 말 그대로 오래 연체된 부실채권은 회수 가능성이 낮아 거래 가격이 낮은 것은 지극히 정상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빚 독촉으로 고통 받으며 삶과 죽음을 오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채권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고통이 가득한 채권은 금융사에서 대부업체로 넘어가 추심을 하다가 추심에 실패하면 또 다른 대부업체로 되팔린다.

“사람들의 고통이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했다”

금융 시스템은 채권마다 들어 있을 사람들의 인격을 배제하고 오로지 액면가와 현금화 가능성만을 평가해 빚을 갚지 못해 겪는 고통을 하나의 상품으로 물질화해버렸다. 연체할 수밖에 없는 아픔, 빚 독촉을 받으며 느끼는 압박감과 수치심 등이 채권의 회수 가능성에 따라 가격이 매겨져 여기저기 팔려다니는 상품으로 전락한다.

모든 것을 화폐화 해버리는 금융 자본주의의 맨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채권 시장에서는 실직이나 질병 등으로 갚을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채권의 등급으로 매겨지고, 그 등급에 따라 사람들의 고통이 화폐의 세계 안에 갇혀버린다.

이제 금융시스템은 사람들이 마땅히 느껴야 할 동정심, 안타까움, 고통에 대한 공감을 제거해버린 채 소시오패스와 같이 작동할 뿐이다.

이에 대해 경제학자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와 에드워드 스키델스키Edward Skidelsky는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에서 “모든 것의 가격은 알지만 그 어떤 것의 가치도 모르는 것을 냉소주의라 부를 수 있다면 세계 금융센터들은 냉소주의의 온상이다”라며 금융의 과도한 화폐화를 꼬집는다.
많은 사람들이 강하게 믿었던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상식도 배신을 당한다. 우리의 상식 안에는 채권자가 반드시 빚을 회수한다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다. 채권이 헐값에 여기저기 팔리는 채권 시장은 이런 믿음과 반하는 현실을 의미한다.

“금융사들은 채권 회수를 쉽게 포기하고 있었다”

이런 식이라면 반드시 빚을 갚아야 한다고 믿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채권자 당사자가 쉽게 포기하는데 오히려 제 3자의 입장에서 갚으라고 요란을 떨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빚을 깎아주는 것이 마치 정부에서 세금으로 대신 갚아주는 것이란 오해를 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미 채권자들은 쉽게 채권 회수를 포기하고 헐값에 대부업체에 채권을 팔아치우고 있다. 여기에 세금 투입은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다.

이 대목에서 다른 의문을 제기해 보자. 대부업체에 그렇게 헐값에 팔 것이었다면 왜 채무자에게 직접 빚의 일부를 깎아줄 수 없었던 것일까?

대부업체에 5% 가량에 팔기 보다 채무자 당사자에게 형편에 맞는 채무 조정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금융사는 채무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시간이 없었던 듯싶다.

그 채무자가 오랜 기간 동안 성실이 이자를 납부해 왔었더라도 예외는 없다. 성실히 갚을 때는 착한 채무자이자 고객일지 몰라도 연체를 시작하면 회계 장부상 성가신 부실채권의 주인공일 뿐이다.

은행에 얼마나 오래, 많은 이자를 갚아 왔는지와 무관하게 연체자는 인간성을 평가 받지 못하는 채권으로 전락해 가격이 매겨지는 상품일 뿐이다.

상담 중 30대 중반의 여성도 자신의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은행에 분노하고 어머니에 대한 생각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그 여성의 어머니는 10년간 집에 딸린 이자를 단 한차례의 연체도 없이 꼬박꼬박 갚아왔다.

그러나 아버님의 사업 실패로 느닷없는 경제 위기 상황에 내몰렸고 은행 빚을 연체하게 되었다. 빚이 연체 된지 겨우 6개월 만에 은행은 경매 통보를 해왔다.

10년간 이자를 챙기면서 은행은 적지 않은 수익을 가져갔지만 그 수익 중 한 푼도 채무자를 위해 쓰이는 돈은 없었다. 채무자들이 어려울 때 채무자의 딱한 사정을 들어주면서 상환 가능한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등의 고객 서비스는 현재 우리나라 금융사들에게 기대할 수 없다.
“처음에 무조건 1600만 원을 모두 갚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리고는 곧바로 하나밖에 없는 통장에 압류를 해버리더라고요..이런 악몽이 끝도 없이 재현될 것이란 생각에 정말 죽고 싶었습니다.”
억울한 빚을 죽도록 일해서 갚는 일이 끝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공포심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다. 이런 시련에도 ‘아파도 인생이다’를 외치며 ‘더 열심히 일해서 빚을 갚아야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다행히 이미옥 씨는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우리는 채권의 2차 시장에서의 거래 실태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 여성을 괴롭히는 대부업체가 채권을 1% 전후의 가격으로 매입했을 것이라 예상했다.

이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부업체에 채무조정을 요청했다. 지자체의 대부업 관리 감독 담당 공무원의 도움도 받았다. 대부업체 주소지의 해당 지자체 공무원에게 적극적으로 사정을 이야기했고 공무원은 이미옥씨의 딱한 사정을 대부업체에 피력하면서 채무 조정을 권유했다.

그 결과 애초 채무 원금의 25% 선에서 채무 조정을 마무리하고 그 여성에게 새출발의 기회가 주어졌다. 차후 새로운 빚이 발생하게 되면 다시 상담을 이어가기로 약속도 했다.

“가난한 채무자들은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단지 더 벌고 싶어도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생계가 막막해 고금리 빚이라도 얻어 쓸 수 밖에 없었던 가여운 사람들이다.

물론 의도적으로 채무 상환을 회피하는 사람들도 있다. 갚을 능력이 되면서도 상환 회피의 방법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면서 말 그대로 도덕적 감수성이 낮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지독한 빚 독촉이 가능한 사회 구조에서도 얼마든지 빠져나간다. 이런 사람들은 그리 흔하지 않다. 오히려 법원에서 날아온 문서 한 장에도 심장이 내려앉고 집 앞에 서성이는 남성만 보면 추심원일 것 같은 생각에 발걸음이 얼어붙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국회의 국정감사 결과 328만 명이 2금융권 대출과 대부업대출 등을 동원해 기존 빚을 갚고 있다. 더 높은 이자율의 빚을 얻어서라도 빚 독촉을 피하고 빚을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 수치이다.

상담으로 빚의 공포에서 벗어난 채무자들 대다수가 ‘기회가 되면 꼭 한번 커피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들은 다른 무엇보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을 것이란 공포심에서 벗어난 것이 그렇게 고맙고 든든할 수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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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3T16:50:04+09:00 2015.03.12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