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때문에 죽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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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펀딩] 9화, 머니머니 노래가 TV에서 사라질까?

텔레비전 광고는 15초의 마술이라 불린다

15초라는 짧은 시간 동안 시청자에게 강한 자극을 줌으로써 지갑을 열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것이 마술인 이유는 단지 구매를 권유할 뿐 아니라 교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 때문이다.

시각과 청각을 자극해 조너슨 프랜즈(미국의 소설가)이 말한 ‘자신이 스스로 만드는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 상상하도록 만든다. 광고속에 등장하는 저 제품만 소유하게 되면 조너슨 프랜즈의 표현처럼 ‘실물보다 나아 보이기 만드는 거울’을 갖게 될 것 같다.

이런 텔레비전 광고는 인터넷과 스마트폰 등의 등장에도 광고계 강자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최근 어느 기업에서 진행한 ‘온라인 광고 현황’이라는 주제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소비자와 마케터들은 여전히 광고 및 마케팅에 가장 좋은 매체로 텔레비전, 신문 등 전통적인 매체를 선택했다.

소비자들의 절반 이상인 53%가 텔레비전 광고 시청을 선호했다. 텔레비전 화면 속의 짧고도 강렬한 메시지는 우리 일상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광고의 영향력은 때로 너무 효과적이어서 불편하고,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마치 우리 귀에 대고 “네가 가진 것들은 모두 후져”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혹은 너무 기발해서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

“15초의 마술”

한 남자가 “나 오늘 (대부 업체) OOOOO에서 대출 받았어”라고 말한다. 그러자 여자 친구는 “거기 이자 비싸지 않나?”라고 되묻는다. 남자친구는 “버스랑 지하철만 탈 수 있나? 바쁠 땐 택시도 타는 거지”라고 말한다. 고금리 대부업 대출 광고에 다정한 연인이 등장할 줄이야 누가 쉽게 상상이나 했겠는가.

물론 상당히 비현실적인 광고다. 멀쩡한 남자라면 대부 업체에서 돈을 빌리면서 여자 친구에게 자랑하지 않는다. 돈이 없어 고금리 대출을 일으키는 게 창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비현실적인 광고가 현실로 바뀌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미 ’15초의 마술’은 신용카드 광고를 통해 우리 일상에서 카드 외상이 현금 쓰는 것보다 멋있게 보이게 만든 탁월한 위력을 보여 준 바가 있다.

“우연히 텔레비전 광고를보고 대출을 하고 만 것입니다. 그땐 삶이 이렇게 지옥처럼 변할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처음 200만 원을 받아서 카드연체를 해결했고, 다시는 대출을 안 하고 더 아껴서 갚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처럼 되질 않고 애들은 자꾸 커가고 지출이 늘어만 가더군요. 처음 200만 원이 300만 원 되고, 500만 원 되고 1000만 원이 됐어요. 지금은 2200만 원이라는 엄청난 빚이 생겨버렸어요.”

이혼한 전 남편의 빚 때문에 새 남편에게 말하지도 못한 채 혼자 끙끙대는 어느 주부의 이야기다. 전 남편은 이혼 전 이 여성의 이름으로 여기저기 카드를 발급받아 이혼 후에도 계속 사용한 모양이다.

사용 후에는 당연히 카드 사용 대금을 결제하지 않았고, 현재의 남편과 어렵게 결혼한 후에 연체 통보를 받고서야 자신이 쓰지도 않은 돈이 빚으로 쌓여 있다는 것을 알았다. 빠듯한 생활비를 쪼개 빚을 갚고 있다가 어느 날 우연히 광고를 통해 대부업 대출을 이용하게 된 것이다.

연체금의 경우 한꺼번에 갚아야 하는 목돈이었기 때문에 생활비를 쪼개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대부업 대출의 ’36개월 동안 천천히 나눠 갚으라’는 달콤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고마운 마음까지 드는 제안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이런 고통을 쏟아내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남편에게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았어요. 10일이 월급날이지만 월급을 받는 순간부터 지옥문이 열리죠. 각종 생활비, 100만 원이 넘는 이자, 진짜로 10일부터 말일까지는 숨도 제대로 쉬질 못해요.”

“빚을 부추기는 치명적인 유혹”

이제 텔레비전의 대출광고는 대상을 세부적으로 나누어 대상에 맞는 탁월한 콘셉트를 선보이고 있다. 여성들에게는 ‘아무도 모르게’라는 콘셉트로, 젊은 직장인에게는 어렵지 않게 선택할 수 있는 사소한 사치로 다가가며 빚을 부추긴다.

이 주부 입장에서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을 ’00사랑’이 함께 해준다는 따뜻한 광고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유혹이 아닐 수 없다.

신용의 기본, 금융질서의 강도 높은 책임 질서에 대해 잘 모르는 젊은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금융 회사에 가서 대출을 이용하려니 까다로운 신용평가 절차가 번거롭고, 사회 초년생의 특성상 신용한도도 거의 나오지 않다. 이럴 때 ‘잠깐 택시 탈 수도 있지 뭐’라는 광고의 유혹은 마찬가지로 허술한 틈을 파고드는 무서운 전략이다.

대출 광고가 사회 구성원에게 얼마나 지독한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를 보여주는 다른 사례도 있다.

중학생과 사회적 기업에 관한 경제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회사를 세우는 데 필요한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몇 몇 아이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OO머니” “1588-OOOO”라고 답했다.

광고 속 대부 업체나 제2금융권 회사의 로고송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드라마, 영화, 스포츠 경기 한 편을 보는데도 대부업, 카드론 같은 대출 광고를 수차례 접하는 시대다. 광고의 질은 높지 않다. 그러나 저급하다고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박현수 단국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교수가 작성한 〈케이블 TV 광고 시청률과 노출효과 분석〉(2003년 10월 일주일간 분석)이라는 자료에 따르면, 케이블 텔레비전의 광고 효과는 공중파보다 효율적이다. 비록 오래된 분석 자료지만 지금도 그 분석 결과는 유효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 연구 자료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광고 시청률이다.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광고 시청률이 가장 높은 방송은 어린이 프로그램인 투니버스였다. 심지어 투니버스의 경우, 광고 시청률이 프로그램 시청률을 상회하기도 한다.

이는 아이들이 광고와 프로그램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광고 구분 여부만이 문제가 아니다.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유독 어린 아이일수록 광고에 잘 몰입한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아이들은 경우에 따라 프로그램보다 광고를 더 좋아하기도 한다. 그만큼 광고가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순간 몰입을 끌어내도록 공들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어린이 프로그램에도 대출과 돈다발이 등장하는 광고가 예외 없이 방영되었다. 최근에야 어린이 프로그램들끼리 자체 협약으로 대출 광고를 방영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케이블 텔레비전 곳곳에서 하루 종일 반복되는 대출 로고송은 아이들의 입에서 새어나오고 있다.

또한 부모가 시청하는 영화, 드라마 채널의 광고는 광고 몰입도가 높은 아이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광고의 품질은 저급할지 모르나 이미 아이들에게는 파블로프의 개 실험에서와 같은 조건반사가 형성됐을 수도 있다.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만으로도 대출을 떠올리는 조건반사 말이다.

이 얼마나 지독한가. 대한민국은 현재 광고를 통해 아이들에게 돈이 필요하면 고금리 대출을 일으키라고 학습시키고 있다.

행동경제학자들의 실험에 따르면, 피실험자에게 돈을 떠올리는 작업을 시키면 그는 더욱 이기적이고 개별적이며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돈 생각만 하게 만들어도 사람은 그렇지 않을 때에 비해 이기적이고 이해타산을 따지는 쪽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돈은 그 자체로 대단히 자극적인 도구다. 텔레비전 화면에 돈다발이 등장하는 게 위험한 이유다.

당장의 생계비 걱정에 하루하루 쫓기는 입장이라면, 빚에 쫓겨 추심에 시달리고 있다면, 최선을 다해 살아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 한숨짓고 있다면, 화면 속 돈 뭉치에 흥분하는 것은 당연하다.

새누리당의 모 의원 조사에 따르면 이렇게 자극적인 대부업 광고가 하루 1100회 이상 전파를 타고 있다. 지난해 대부협회가 대부업체 이용자 3,24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2%가 TV 광고를 통해 대부업체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광고를 통해 알게되었다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17%와 6%였다. 그 만큼 하루 1,100회 이상의 TV를 통한 대부업 광고의 위력이 압도적임을 알 수 있다.

바로 이러한 대부업 대출 광고가 국회의 법앞에 심판을 받게 되었다. 여당과 야당의원들이 모두 대부업 대출 광고 규제 관련 법안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법안은 이미 2년전에 제출되었지만 최근에야 여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 국회 정무위를 통과했다. 그러나 남은 지뢰밭이 없는 것이 아니다.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해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사위는 최근 다른 상임위 소속 의원들로부터 월권을 행하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해당 사안을 집중적으로 심의하는 상임위에서 통과된 안건 들이 법사위에서 법 조항을 수정한다거나 본회의 상정을 보류하고 해당 상임위로 다시 되돌려 보냄으로써 법안이 표류하게 만들고 있다.

최근 법사위의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이 담뱃값에 흡연 경고그림을 의무화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 통과에 제동을 건 일이 논란에 휩싸였다.

보건복지위를 통과한 이 법안은 법사위에서 제동을 거는 바람에 법 통과가 보류되었다. 이와 관련해 한국금연운동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오는 22일 법안심사소위를 앞두고 KT&G 직원이 경고그림 도입 유예기간을 2년 이상으로 지연시키고 혐오그림을 넣지 못하도록 법사위 의원실을 드나들며 설득하고 다닌다고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해당사자들이 상임위가 아닌 법사위를 적극적으로 공략함으로써 법 통과를 지연시키거나 무산시키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정황을 볼 때 대부업 광고 금지 법안도 정무위를 통과했지만 법사위에서 제동이 걸리지 말란 법이 없다. 특히 대부업체들과 종편과 CJ가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는 케이블 TV 측에서 이 법안을 불편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법사위 통과가 무난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들이 나오고 있다.

“영화 한편을 보는 데도 중간광고까지 3회 이상의 대출광고를 접하는 현실이다”

대부업체 이용자의 절반이 이 대출광고에 영향을 받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2012년 서울연구원과 에듀머니가 공동으로 진행한 가계 부채 실태 조사결과에 따르면 150만원 미만의 소득자 절반이 대부업대출을 이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을 했다.

2013년 서울시 가계부채 현황조사 설문(서울연구원, (주)에듀머니 공동조사)

또한 이용자의 90%가 다른 대출을 상환하기 위해 대부업 대출을 일으킨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출 이용자의 57.6%는 현재 연체중이었고 연체로 인해 채권 추심을 받고 있는 사람 중 10명 중 7명이 추심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추심 내용의 25.2%는 제 3자에게 채무 사실을 알리거나 협박과 욕설 등의 언어폭력과 같은 불법 추심을 행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10년째 자살률 1위의 오명을 이어가고 있는 비극의 배경에는 분명히 빚독촉에 의한 비관이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대부업체와 같은 고금리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서민들이 겪는 빚독촉은 극단적인 경우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을 만큼 위험한 일이다.

대부업체들은 ‘대부업 이용자가 알아서 대출위험을 판단’할 문제라며 광고 규제가 과잉규제라고 목소리를 낸다. 그러나 당장 심각한 돈 문제에 내몰린 사람들이 광고를 통해 ‘친구 같은 대출’ ‘아무도 모르게’라는 광고문구에 의해 따뜻하게 포장된 대출이 위험하다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그들은 TV에서 친절한 대출이 알고보면 3년만 지나도 이자가 원금을 뛰어넘는 고금리고 갚지 못해 연체 하게 되면 무시무시한 빚독촉에 내몰릴 것이라는 현실을 알아채기 어렵다.

혹은 이미 알고 있었더라도 절박한 상황에서는 이성적 판단이 어렵다. 대부업협회는 청소년들에게 대출광고가 위험하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신용교육을 시키면 된다는 식이다.

만약 그런 논리라면 알코올과 담배 광고는 왜 금지하겠는가. 모든 것이 개인들이 알아서 위험을 인식하고 광고가 만들어내는 판타지에 속지 않으려 늘 각성하고 살아야 하며 아이들에게 광고는 전부 과장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교육해야 한다는 논리나 다름없다.

담배관련 법안의 모순과 비슷하다. 국민 건강을 위해 담뱃값을 올린 정부 여당이 법사위를 통해 담배 포장지에 혐오 그림을 넣는 것은 흡연자의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말한다.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고 싶었다면 담뱃값을 올리지 않았어야 한다. 가격을 올릴 때는 국민건강권을, 흡연의 위험 경고를 위해서는 국민 행복추구권을,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명분이 오락가락한다.

법사위의 최종 통과에서 대출은 위험하지만 광고는 과잉 규제고, 위험성은 각 가정에서 알아서 판단하고, 특히 아이들에게 광고를 보며 머릿속에 각인되는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부모들이 알아서 교육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오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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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6-13T16:53:39+09:00 2015.05.06 1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