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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자 중산층으로 확산… 지금 조정 안해주면 세금 더 들어간다”

[2023 경제 어떡해 ③] 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

코로나 19로 인한 침체를 벗어나나 싶었는데, 치솟은 이자 부담, 드러나는 거대 전세 사기, 연료비·전기료·교통비에 밥값까지 줄줄이 인상. 그 와중에 법인세는 깎아주고 노동시간은 늘리겠다는 정부. 성장률도 낮고 수출도 부진한 가운데 서민들은 어떻게 한 해 살림살이를 꾸려가야 할까? 각 분야 전문가들의 제언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류승연, 권우성 기자]


▲  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
ⓒ 권우성

지난해 7월. 정부가 저신용 청년층을 구제하는 ‘청년 특례채무조정안’을 내놓았다가 ‘영끌족 빚탕감’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신용 평점 하위 20%에 내몰린 청년층을 되살릴 계획이었지만 대상자에 주식·코인 등에 빚을 내 투자한 이들도 포함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가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고 있다는 지적이 빗발쳤다.

수년간 채무자 구제에 앞장섰던 전문가의 입장은 어떨까. 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는 지난 4일 서울시 동대문구에 위치한 주빌리은행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빚을 진 청년층을 구제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밝혔다. “청년층을 제때 구제하지 않으면 결국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한 그들을 국민 세금으로 부양하게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으면서다.

주식·부동산 시장 등 수많은 경제 지표들이 하나같이 2023년의 경기 침체를 예고하는 요즘, 유 이사는 한숨을 쉬는 날이 잦아졌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등 사회가 굵직한 위기를 맞닥뜨릴 때면 스스로 감당하지 못할 빚을 진 채무자들이 쏟아져나오곤 했던 까닭이다.

빚을 내 코로나 19 상황을 버텨낸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불경기를 잠시 벗어나는가 싶더니 다시 경기 침체라는 어두운 터널을 목전에 두고 있다. 주식·코인·부동산에 투자하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 빚을 낸 소위 ‘영끌족’들도 크게 늘었는데, 치솟은 금리가 ‘이자 폭탄’이 되고 있다.

현재의 기준금리 인상 추세가 지속되면 가계대출의 연간 이자 부담액은 작년 9월 52조4000억 원에서 올해 12월 69조8000억 원으로 증가할 것(한국경제연구원 2022년 11월 18일)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가구당으론 172만원의 이자를 더 내야하는 상황이다. 대출금리의 급속한 상승에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 원금 상환은커녕 이자도 감당하기 힘든 이들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 이사는 “최근 상담자들을 돌이켜보면 채무자가 점점 청년층과 중산층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고 느낀다”면서도 “그런데도 채무자들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여전히 곱지 않다. 파산한 사람은 범죄자가 아니”라고 밝혔다. 이어 채무자들을 향해서도 “경기침체가 와서 많은 빚을 지게 되더라도 어떻게든 채무를 조정할 방법이 있으니 목숨만은 지켜야 한다”고 당부했다.

주빌리은행은 채무자들의 빚을 탕감해주기 위해 시민단체와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해 지난 2015년 설립된 단체다. 장기간 연체돼 가치가 크게 떨어진 부실채권을 후원금으로 사들여, 채무자들을 빚의 늪에서 해방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렇게 주빌리은행을 통해 빚을 탕감받은 사람만 지난해 말 기준 5만 1500여명. 소각한 채권 원리금도 8116억원에 이른다.

‘개인 실수’로 진 빚, 정부가 도와야 할 이유?


▲  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
ⓒ 권우성

– 최근 경제 상황이 심상치 않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이미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많았는데, 지난해 금리까지 오르면서 빚을 진 이들에겐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요즘 주빌리은행은 어떤 채무자들의 연락을 받고 있나?

“예전엔 상담을 의뢰하는 분들이 대부분 오래된 채무로 고통받는 분들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채무자였던 이들이 돈 갚는 걸 포기하고 살다가 뒤늦게 상담을 신청하는 식이었다. 그런데 요즘 채무자들은 본인 명의로 된 부동산 하나씩은 갖고 있다. 또 예전엔 폐업 상태에서 한계에 몰린 자영업자들에게 연락이 오곤 했지만 요즘엔 근로자들 연락도 적지 않다. 채무자가 점점 중산층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느낀다.”

– 최근 상담자들이 진 빚에도 공통적인 특징이 있나?

“보통은 부동산을 무리해 구입했다가 한계에 이른 이들이다. 오롯이 가진 돈으로 부동산을 사는 사람은 없다. 다들 처음엔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는다. 그런데 당초 대출이 소득과 비교했을 때 무리한 수준이었던 것이다. 이자를 갚고나면 일상을 살아갈 수 없으니 또 대출을 받는다. 그러다 보면 빚은 순식간에 여러 개로 늘어나는 식이다.”

–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2023년이 ‘경기침체의 해’가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주빌리은행은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주빌리은행과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를 포함한 11개 신용상담기관이 5일부터 무료 신용상담 플랫폼 모바일 앱 ‘신용플러스’를 출시했다. 많은 빚을 지고 위기에 몰린 채무자들이 쉽게 상담할 수 있는 소통 창구를 만들기 위함이다. 민간과 공공을 포함한 모든 상담 기관들의 역량을 모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본다.”

– 가진 재산보다 더 큰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이들을 어떻게 구제할 수 있을까?

“정부에서 빚을, 채무자의 능력대로 갚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제 활동을 하든 안 하든 채무가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빚을 갚고 싶어 한다. 능력도 안 되는데 (채권자들이) 피고름을 짜서 빛을 갚으라고 하니까 파산하는 것이다. 물론 파산해야 하는 사람이라면 파산도 도와줘야 하지만 경제 활동을 하면서 빚을 갖고 싶다고 한다면 채무조정을 도와줘야 한다. 그런데도 채무자의 빚을 조정해주겠다고 하면 막상 국민들은 탐탁치 않아 한다. 파산자들은 한국에서 손가락질을 받는다.”

“채무자들, 지금 안 도우면 세금으로 ‘부양’할 수도”

 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
ⓒ 권우성

– ‘빚진 이들의 몫을 왜 세금으로 탕감해줘야 하나’ 하는 문제의식 때문일 것이다.

“세금은 10원도 안 들어간다. 엄밀히 말해 은행 대손충당금에서 쓰인다. 당초 은행도 부실률을 생각해 채무자들에 다른 이자율을 매긴다.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에게 더 비싼 이자를 매기지 않나. 그렇게 ‘보험’을 드는 셈이다. 그런데 만약 국민 인식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적시에 채무를 조정해주지 않으면 언젠가 진짜 국민 세금으로 그들을 부양하게 될 것이다.”

– 왜 그런가?

“그들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상담하고 있는 50~70대 채무자들은 모두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때 ‘청년’이었다.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대였다. 그런데 채무 조정이 제때 이뤄지지 않았고 정상적으로 노동을 할 수 없었다. 가령 빚을 지면 보통은 채권자를 피하기 위해 주소지를 아무 데나 등록해둔다. 채권자들은 빌려준 돈을 조금이라도 되찾으려고 주소지를 말소시킨다. 그런데 어딘가 취업을 하려면, 주민등록등본을 내야 하지 않나. 결국 등본을 요구하지 않는 정상적이지 않은 직장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어쩌면 세금을 내면서 살 수 있을 사람의 발목을 잡아 기초생활수급자로 만든다. 그들에 대한 부양은 곧 나라 몫이다.”

– 기억에 남는 상담 사례가 있나?

“2002년 카드 사태 때 청년이었던 한 여성분의 이야기다. 카드를 과도하게 사용하다 돌려막기에 실패했고 파산하면서 곧 집에서 나왔다. 이후 친구 집에 주소를 등록해뒀지만 곧 채권자들에 의해 주소가 말소됐다. 직장에 들어갈래도 등본을 요구하니 들어갈 수 없었고 통장을 만들자니 압류되는 만큼 남의 이름으로 된 통장을 사용했다. 그 와중에 통장주가 돈을 안 줘, 사기를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10년쯤 흘러 상황이 안정되자 빚을 갚아나갔고 모두 갚았다고 생각하고 결혼까지 했다. 그런데 갚지 않은 빚 하나가 남아있고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다. 채권자와 실랑이 끝에 원금의 30%만 갚기로 하고 빚을 청산했다. 그에겐 지금까지도 연락이 온다. 쌍둥이를 낳고 잘 산다고 하더라.”

– 지난해 7월에도 금융위원회에서 주식이나 코인 등 투자로 빚을 진 청년들의 채무를 조정해주겠다고 했다가 청년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코인이나 주식 투자가 개인만의 잘못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사회에서 투자를 하도록 부추겼지 않았나. 정상적인 근로를 하면서 아파트 한 채도 살 수 없으니 투자로 눈을 돌리게 됐다. 또 누구나 잘못은 할 수 있다고 본다. 앞서 말한 이유로, 그들이 다시 일어나 경제 활동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 국내엔 다양한 채무자 구제제도가 있다. 각각을 간략히 설명한다면?

“채무자 구제제도는 연체전(신속)채무조정, 이자율(사전)채무조정. 개인워크아웃, 개인회생, 개인파산까지 총 5가지가 있다. 채무 규모가 비교적 가벼운 앞선 셋(무담보채무 5억원 이하, 담보채무 10억원 이하)은 신복위에서, 나머지 둘은 법원에서 담당한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못한 기간에 따라 신복위의 조정 제도가 달라진다. 가령 신속채무조정은 최저생계비 이상을 버는 30일 이하 연체자에게 적용되는데, 연체 이자율은 면제, 이자율 또한 연 최대 15%로 줄어든다. 사전채무조정은 31~89일 연체자가, 개인워크아웃은 90일 이상 연체자가 그 대상이다. 각각 약정 이자를 절반으로 깎아주거나 전액 감면한다. 개인워크아웃에선 원금도 일부 탕감해준다.

반면 개인회생 대상자는 최저생계비 이상 고정소득을 벌지만, 무담보 10억원 이하, 담보 15억원 이하의 채무를 진 사람이다. 이때 법원은 채무자 소득으로 3~5년까지 일정 금액을 변제하면 남은 채무를 면책해준다. 반면 개인파산은 채무자에게 소득이 거의 없어 채무를 상환할 수 없는 이들에게 적용되는 제도다. 채무자의 남은 재산을 처분해 채권자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빚은 면책된다.”

“파산하면 ‘주홍글씨’ 새겨진다는 말은 허상”

 유순덕 주빌리은행 상임이사.
ⓒ 권우성

– ‘상담을 받아야 하는 수준’이란 어느 정도일까?

“자신의 소득만으로 생활이 되지 않는 정도의 빚을 진 분들에게 상담을 권하고 싶다. 보통 그런 분들은 대출을 돌려막기할 생각부터 한다. 채무조정제도가 있다는 걸 모른다. 오히려 신용불량자가 되면 신용카드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등 사회에서 매장 당한다고 걱정한다.”

– 실제로 채무자들이 채무 구제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데는 신용불량자에 대한 불이익에 대한 공포도 있을 듯하다.

“불이익은 개인파산이 아니고서야 거의 받지 않거나 미미한 정도다. 예전엔 파산을 하고 면책을 못 받으면 호적에 ‘빨간 글씨’가 새겨진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허상이다. 물론 요즘도 파산 후에 면책을 받지 못하면 금융거래나 취직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다. 그런데 요즘은 파산과 면책을 동시에 신청을 할 수 있게 된 데다 면책을 못 받는 사람도 거의 없다. 최종 면책이 결정되면 신용이 회복돼 일상 속 불이익이 사라진다.”

– 이미 감당 못할 빚을 떠안고 있는 또는 앞으로 떠안게 될 채무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

“목숨을 지키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다. 실제로 자살 예방 센터에서 종종 연락이 온다. 채무자가 불법 사금융까지 끌어 쓰다가 불법 추심을 당하고, 끝이라는 생각에 목숨을 버리려 할 때다. 나는 이렇게 설득했다. 지킬 재산이 있을 때 무서워 죽는 거지 지킬 재산도 없는데 왜 죽으려고 하냐고 말이다. 또 요즘은 채권자가 채무자를 두려워해야 한다. 추심법(채권의공정한추심에관한법률)이 워낙 강화됐기 때문이다. 불법채권추심도 엄격히 금지돼 있다.”

– 요즘 불법 추심은 어떤 형태로 이뤄지나?

“돈을 빌릴 때 사채업자들은 채무자가 일주일 동안 전화를 가장 많이 했던 십수명의 연락처 등 정보를 건네받는다. 그러다 채무자가 돈을 갚지 않으면 카카오톡에 단톡방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채무자의 빚진 사실을 퍼트린다. 최근에도 불법 사금융으로 인해 목숨을 끊으려다 구조된 채무자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사채업자에게 대신 통화를 해보겠다며, 연락처를 달라고 하자 채무자는 ‘안 된다’고 했다. 가족이나 지인들이 빚진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으면 어차피 모두가 알게 된다. 죽기 전에 아는 것과 후에 아는 게 무슨 차이가 있냐’며 독한 말을 했다. 결국 사채업자들을 설득해 사건을 종결했다.”

– 앞으로 다가올 경기침체에서 채무자를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해 추가적으로 어떤 제도가 뒷받침돼야 할까?

“현재는 변호사만 가능한 채무조정교섭업을 금융복지상담사들도 할 수 있도록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고 본다. 채무자를 대신해 원리금을 감면하거나 이자율을 조정하는 등 채무 조정을 대행하는 업종을 가리키는 말이다. 보통 오래된 채권은 여러 곳에서 사고 팔리다, 헐값이 된다. 장기 부실 채권은 채권자들에게도 ‘돌려받을 가능성이 적은 돈’으로 여겨지는 만큼 채권자-채무자간 중재가 필요한 셈이다. 이 점을 감안해, 지난해 3월 금융위원회는 ‘개인금융채권의 관리 및 개인채무자 보호에 관한 법률’을 입법 예고하면서 채무조정교섭업 관련 내용을 신설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럿 반발에 부딪쳐 최종안에서 제외됐다.

또 전국에 15곳의 금융복지상담센터가 활성화가 됐으면 좋겠다. 과중한 채무를 지고 있는 이들이 자유롭게 상담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 또 각 주민센터별로 사회복지사들이 존재하듯, 금융복지상담사들 또한 센터별로 상주할 수 있다면 좋겠다. 금융복지상담사들이 없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나라로부터 받은 수급비를 채권자들에게 되갚기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당장 채무자가 일상 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소득이 없을 때, 채권자들에게 추심을 중지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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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채무자 중산층으로 확산… 지금 조정 안해주면 세금 더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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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7T12:40:28+09:00 2023.01.17 1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