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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더스쿠프] 채무노예, 서민금융의 무서운 덫

‘서민금융’이라는 명목 아래 복지를 금융으로 대체해 버린 사이, 우리나라의 많은 저소득층이 ‘연체자’로 전락하는 비극을 겪고 있다. 갚을 능력이 안 되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사람을 채무 노예로 만드는 일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서민금융이 아닌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상환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사람을 채무의 노예로 만드는 약탈적 행위다.
[사진=뉴시스]

소액대출을 통한 빈민퇴치에 앞장서며 전세계에 감동을 선사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Grameen Bank)을 두고 여러 구설이 나돈다. 그라민 은행의 첫 수혜자였던 ‘수피아 베굼’은 2006년 그라민 은행이 노벨상을 받은 이후 빈곤에서 벗어난 사례로 소개됐다. 하지만 후속 연구에 따르면 베굼은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다 죽었고 그녀의 손자는 여전히 인력거를 끌며 살아가고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소액의 자금을 빌려주고 가난에서 탈출시켜 대출 상환율을 높이는 사업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사업의 성공과 가난에서의 탈출이라는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이는 가난의 원인이 돈을 빌리지 못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대출의 허상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라민 은행의 영향으로 설립된 인도의 ‘SKS마이크로 파이낸스’는 폭력적인 방법으로 자금을 회수해 농민 자살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다행히 우리나라의 서민대출은 이처럼 약탈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저소득층을 위한 금융 사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긴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마이크로 크레딧인 ‘미소금융’은 공적 자본을 기초로 법에 따라 추진돼 엄격한 공적 감시를 받아왔다. 그 결과, 해외 사례와 달리 저금리로 상품이 설계됐고 회수 과정도 폭력적이지 않다. 문제는 회수율과 건전성이다.

지난해 2월말 기준 미소금융의 연체율은 10%대에 육박했다. 미소금융뿐 아니라 저소득ㆍ저신용자를 위해 설계된 ‘햇살론’이나 ‘바꿔드림론’ 등 정부 주도 서민금융 상품은 현재 심각한 부실 가능성 직면해 있다. 정부가 직접 나서 보증을 해주거나 휴면예금 등을 활용해 대출을 해줬다. 하지만 저소득ㆍ저신용 계층이 이런 정책금융을 지렛대 삼아 자활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정부의 서민금융 상품을 빌려 다른 빚을 갚거나 추가로 카드 대출을 받는 경우도 있다.

이를 채무자가 무책임한 것이라고 평가해서는 안 된다. 애초에 상환 능력이 안 되는 사람에게 낮은 이율이든 높은 이율이든 돈을 빌려주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인 대책이라서다. 좋은 취지로 시작한 사업조차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마당에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수익을 올리려는 대출 사업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갚을 능력이 안 되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람을 채무 노예로 삼는 약탈적인 행위일 뿐이다.

▲ 서민층에게 필요한 것은 빚이 아니라 안정적인 일자리와 복지정책이다.[사진=뉴시스]

정부와 보수 정치인은 급전이 필요한 서민을 위해 대부업 대출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얼핏 타당한 이야기로 들린다. 금융회사가 신용이 낮은 사람에게 돈을 빌려줄 경우 금융 건전성이 훼손될 위험성이 있어서다. 부실 대출이 늘면 그만큼 금융회사가 부실해질 수 있고, 부실이 극단에 이르면 금융회사에 세금 투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국민 경제에 해롭다는 논리다.서민금융의 심각한 허상들

이런 이유로 금융회사는 저소득ㆍ저신용층을 위한 과감한 대출 사업을 진행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들이 필요로 하는 급전을 누가 해결해줄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여기서 미우나 고우나 대부업체의 영업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급전의 의미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급전이란 말 그대로 급하게 필요한 돈이다. 사업을 하다가 필요한 돈,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해 급하게 필요한 돈이 급전이다. 일상적으로 돈이 부족한 상태를 급전이 필요한 상태라고 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일시적인 자금 수혈이 아니라 근본적인 소득 보장과 일자리 등의 복지 서비스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급전을 공급하기 위해 대부업체가 필요하고, 그런 대부업체가 회수 가능성이 낮은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주는 친절을 베푸는 한, 상식 이상의 고금리 구조는 어쩔 수 없다는 주장은 엉터리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는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복지 서비스의 확대를 가로막고 복지 그물망의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을 고금리 대출 시장으로 내몰아 채무자ㆍ연체자로 전락하게 만들 수 있어서다.

지난해 발생한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자살을 앞두고도 집주인에게 “미안하다”며 공과금을 남긴 세 모녀. 그들의 죽음을 둘러싸고 이런 저런 사회적 논의가 진행됐다.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점과 기초생활 수급제도의 비현실성을 꼬집는 토론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런 논의는 이렇다 할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흐지부지돼 버렸다.

자살예방상담소에 근무하는 어느 실무자는 자살을 결정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채무독촉이라고 지적했다. 빚을 갚지 못해 시작되는 채무 독촉은 좌절감과 열패감을 갖게 만들 뿐만 아니라 극도의 수치심으로 이웃이나 가족과의 관계도 단절하게 만든다.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순간은 ‘희망’이 사라질 때다. 채무독촉은 벗어나고 싶어도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는 사람의 희망을 지워버리는 일이다. ‘송파 세모녀 자살’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 중 두 딸이 신용불량 상태였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결정적인 요인이 연체 상태에서 이뤄졌을 채무 독촉일 공산은 상당히 크다. 이를 통해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한 사람을 향한 ‘도덕적 해이’라는 사회적 비난이 얼마나 잔인한지도 알아야 한다.

미국의 작자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노동의 배신」이란 책에서 “가난할수록 돈이 더 든다”고 꼬집었다. 이런 논거에서다. “저소득층에겐 고금리 대출이 적용돼 금융비용을 더 많이 지출해야 한다. 또한 주거복지 사각지대에서 감당하기 힘든 월세를 부담해야 한다. 먹는 게 부실해 건강 상태가 나쁘고, 그 결과 병원비도 더 많이 들어간다.”서민층 자활 돕는 복지정책 있어야

하지만 가난하기 때문에 주거비ㆍ병원비ㆍ금융비용을 더 많이 지출해야 하는 문제는 미국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그나마 미국은 대출자의 상환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대출을 ‘약탈적 대출’로 규정해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저소득층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을 시혜로 여기고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금융이 아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와 기본적인 삶을 지킬 수 있는 ‘사회 안전망’이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 jykkto@daum.net

 

출처 : http://www.thescoop.co.kr/news/articleView.html?idxno=17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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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05T11:50:31+09:00 2015.08.04 10:16|